꺼진 휴대전화 갖고 있어도 부정행위…판결로 본 수능 주의사항

입력 2021-11-17 16:50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8일 시행된다. 수능은 학생들이 12년간 준비한 실력을 쏟아내는 큰 시험인 만큼 문항 오류나 고사실 문제, 감독관 안내의 적정성을 놓고 법적 시비가 벌어지는 일이 적지 않다. 최근 몇 년간 나온 ‘수능 법정 다툼’ 판결을 통해 학생들이 주의할 점을 살펴봤다.

2019학년도 수능을 본 한 수험생은 2교시 수학 영역 시험을 보던 중 감독관으로부터 “문제지의 이름과 수험번호를 샤프가 아닌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적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학생은 감독관이 규정에 없는 지시를 하는 바람에 수학에서 평소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고 지원한 대학에 불합격했다며 대한민국과 해당 교사를 상대로 7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모두 감독관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샤프로 문제지에 인적사항을 적었다가 내용이 지워지면 향후 문제지의 내용을 확인할 때 응시자가 불이익을 감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며 “또 응시자에겐 관리요원의 정당한 지시에 성실히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규정에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정당성이 있는 지시라면 학생이 따라야 한다고 본 셈이다. 재판부는 또 “공무원에게 경과실만 있는 경우엔 공무원 개인은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며 “감독관에게 고의·중과실이 있음을 인정하기도 부족하다”고 봤다.

물론 감독관의 지시가 명백하게 잘못됐다면 배상 책임이 인정되기도 한다. 2016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학생은 ‘잔여시간이 카운트 되는 시계는 소지할 수 없다’는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시계를 제출했다. 하지만 해당 시계는 반입 금지품목이 아니었고, 감독관의 착각으로 학생은 시계 없이 시험을 치러야 했다. 수능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된 학생은 감독관과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국가와 감독관이 함께 학생에게 5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수능 공지사항을 꼼꼼히 읽어야 할 필요성도 법원에서 인정된 바 있다. 2017학년도 수능에서는 시험장 반입이 금지된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은 채 시험을 본 학생이 부정행위자로 처리됐다. 당시 4교시 시험 도중 진동 소리가 들렸고 감독관은 모든 시험이 끝난 뒤 금속탐지기로 해당 휴대전화를 적발했다. 학생은 “휴대전화는 전원이 꺼져있었고 시험이 모두 종료된 뒤 적발된 것”이라며 소송을 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휴대전화 반입이 금지된다는 건 충분히 공지됐던 내용”이라며 학생의 주장을 일축했다.

심각한 ‘불수능’일 경우에도 소송 대상이 될까. 난도가 높았던 2019학년도 수능을 두고 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국어 영역 3문항, 수학 가형 7개 문항, 수학 나형 5개 문항 등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넘어 출제됐다”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모두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 문항의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이를 위법하다 보긴 어렵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수능의 경우 높은 난도의 변별력 있는 문제가 출제되지 않으면 대학 입장에서 지원자의 수학능력을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매년 수능을 둘러싸고 각종 소송이 제기되는 건 그만큼 중요성과 상징성이 큰 시험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 같은 소송은) 배상금을 얼마 받겠다는 목적보단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상징적 결과를 받아낸다는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