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애쓰는 대통령에 고맙다 해줄 수 없나”

입력 2021-11-17 16:28
임종석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이 지난 6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다시 시작하는 남북합의 이행' 토론회에 참석해 '다시 시작하는 밤북합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권심판이라는 구호는 부당하고 불편하다”며 “마지막까지 애쓰는 대통령에게 수고한다, 고맙다 해줄 수는 없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임 전 실장은 17일 페이스북에 “대선의 시계가 째깍거리고 문재인정부의 임기가 끝나간다. 많은 일이 그렇듯 설렘으로 시작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심경을 밝혔다.

임 전 실장은 “(2017년) 5월 9일 선거, 5월 10일 업무 시작. 상상도 못했던 탄핵사태를 뒤로 하고 문재인정부는 그렇게 출발했다. 인수위 기간이 없는 상황을 수도 없이 가정하며 대비했지만 탄핵받은 정부의 국무위원과 두 달이 넘게 동거하며 초기 국정의 틀을 잡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대통령의 경험과 원칙이 모든 부족분을 메웠다”고 회고했다.

이어 “격화된 국내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문재인정부의 초기 정체성을 ‘애국과 보훈’으로 설정하고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합을 강조하며 국가 기념일을 의미있게 챙겨나갔고 국가유공자들에게 예우를 다하려 공을 들였다”며 “악화된 외교 환경을 개선하고 외교적 지평을 새로 확장하는 일에 역점을 두었다. 거의 매일 최고위 단위에서 미국과 소통하는 동시에 한한령을 해제하기 위해 중국과도 긴밀한 협의를 해나갔다”고 술회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2018년 8월 10일 청와대 본관에서 충무실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임 전 실장은 대일 외교와 관련해선 “잘못된 위안부 합의를 바로잡고 일본과의 관계를 실용적으로 개선하는 이른바 투트랙 한일관계는 상대와 손발이 맞지가 않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다만 그는 “주도적으로 신남방, 신중동, 신중앙아시아 외교를 펼쳐 나갔다. 대통령은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한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고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UAE, 우즈벡 등의 지도자들과 형제 같은 우정을 쌓았다”고 평가했다.

임 전 실장은 “하노이에서 멈춰선 남북 평화열차는 못내 아쉽다”며 “문재인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의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성과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그 차별성이 있다. 한미관계에 몇 배의 공을 들인 이유이다. 냉엄한 국제현실에서 미국의 인내와 동의 없이는 한반도에서 시대사적 전환을 이루는 일이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 바탕한 노력이었다”고 돌이켰다.

경제 분야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임 전 실장은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거의 모든 분야의 산업 지표가 좋다”며 “반도체,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전통 산업은 또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고, 부품 소재 분야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있으며,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서도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미국, 중국에 이어 으뜸 성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선 “아프고 또 아프다”고 했다. 임 전 실장은 “글로벌 환경이 그렇다고 하는 건 지식인의 변명이다. 정치의 책임은 그만큼 무겁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진 데 대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정부가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하고 무엇보다 다음 정부가 이 소중한 꿈을 되살려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국 전 민정수석이 지난 2018년 4월 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임 전 실장은 또 “문재인의 단어는 숙명”이라며 “그의 능력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애써 권력을 쥐려는 사람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렇게 보내고 운명이 그렇게 된 것이다. 문재인은 그래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죽어라 일을 한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몸을 혹사한다. 옆에서 보기 안쓰럽고 죄송할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문재인에게 위로는 자연과 동물이다. 임기를 마치면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서민의 삶을 당신은 꼭 살아가시길 바란다”며 “‘숲 해설사’가 되시면 그것도 좋겠다”고 했다.

임 전 실장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염두에 둔 듯 “정권교체도 정권재창출도 적절치 않은 표어다. 정권심판이라는 구호는 부당하고 불편하다. 새로 들어설 정부는 반사체로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의 새로운 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글을 마치며 “마지막까지 애쓰는 대통령에게 수고한다, 고맙다 해줄 수는 없는 것인가”라며 “거친 것들이 난무하는 강호에도 서로를 존중하는 의리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