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FTA는 다르다…농산물 대폭 개방 CPTPP 추진 ‘어쩌나’

입력 2021-11-17 06:05 수정 2021-11-17 12:15

정부가 가입 추진을 공식화하려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경고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명분만 보면 수출 중심 경제인 한국의 통상 영토를 좀 더 넓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인식이 높다. 하지만 농업 생태계가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CPTPP는 한국이 체결·발효한 17개 자유무역협정(FTA)의 농산물 자유화율과 비교해 개방폭이 지나치게 크다. 대부분의 농산물 관세율이 ‘0%’가 된다. CPTPP 가입 추진이 한국 농업에는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CPTPP 가입 추진을 공식화하기 위한 검토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해당 관계자는 “가입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들에 대해 준비를 완료한 상태”라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1월 개최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후속 작업을 얼추 마무리한 것이다.

CPTPP 가입을 추진할 경우 한국의 통상 영토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정부의 공식 FTA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미 17건의 FTA가 발효된 상태다. 정부가 서명하거나(4건) 협상을 완료하고 타결한 사례(1건)를 더하면 22건의 FTA가 가동 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직 협상 진행 중인 신규 FTA도 6건에 달한다. 여기에 메가 FTA인 CPTPP가 더해지면 협상 건수뿐만 아니라 영역 면에서도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다만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FTA와 달리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농산물 관세 철폐 때문이다. CPTPP에 가입한 11개국의 농산물 자율화율은 96.3%에 달한다. 농산물 자율화율이란 전체 농산물 품목 중 궁극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의 비중을 말한다. 현재 발효한 17개 양자·다자 간 FTA의 평균 농산물 자율화율(73.1%)보다 23.2% 포인트나 높다.

물론 한미 FTA와 같은 경우 농산물 자율화율이 97.9%로 CPTPP보다 높기는 하다. 이를 포함해 17개 FTA 중 4개 FTA는 농산물 자율화율이 90%를 웃돈다. 하지만 이 중 미국과 EU를 뺀다면 한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FTA는 없다시피 하다. 농업계 영향이 큰 한중 FTA와 같은 경우 농산물 자율화율 63.9%로 평균에도 못 미친다. 내년 1월 발효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높다. CPTPP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메가 FTA이긴 하지만 농산물 자율화율은 58.5%에 불과하다. 정부 내부에서도 RCEP 발효로 인한 피해액이 77억원 정도에 그친다고 판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중 FTA 때처럼 협상을 통해 농산물 자율화율을 조정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힘들다. CPTPP의 특성 때문이다. 기존 가입국인 11개국이 ‘만장일치’로 가입에 찬성해야만 회원국이 된다. 일본, 캐나다, 호주, 브루나이, 싱가포르, 멕시코, 베트남, 뉴질랜드, 칠레, 페루, 말레이시아 중 단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가입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이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가입이 가능하다.

CPTPP 가입국 중 농업 강국이 다수라는 점이 농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게 만든다. 이미 한국과 FTA를 체결한 호주(88.2%)나 뉴질랜드(85.3%), 칠레(71.2%)의 경우 양자 간 협상에서는 농산물 자율화율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CPTPP가 가동되면 이 논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해당 국가들이 자국 이익을 우선해 관세 철폐를 종용할 가능성이 크다. 농민단체가 17일 총궐기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내에서조차 이견이 나온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가입 추진 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