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 인기상품…명맥 끊긴 전통한지 제조법 규명됐다

입력 2021-11-16 14:36 수정 2021-11-16 14:47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사용됐던 전통한지인 '시지'.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조선시대 과거 시험용으로 많이 사용됐지만 제조법이 전해지지 않아 명맥이 끊긴 전통한지의 제조기술이 규명됐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전통 한지인 ‘시지(試紙)’의 제조기술을 재현했다고 16일 밝혔다.

명지(名紙)라고도 불리는 시지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한지 중 최고급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에는 한해 평균 과거시험이 4차례가 열리는 등 518년 동안 총 2068회의 과거가 치러졌다.

1840년대 이후부터는 시험 1회당 평균 과거 응시자 수가 약 13만~15만명에 달했으며, 1879년에는 21만3500명으로 최다 응시자를 기록했다. 과거시험의 횟수와 응시자의 수가 많은 만큼 시지의 소비량도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험지를 응시자가 직접 준비해야 했던 만큼 좋은 품질의 시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 역시 치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지는 과거제 폐지와 서구화에 따른 한지 수요의 급감으로 점차 사라졌다. 제조법에 대한 명확한 기록도 남지 않은 상태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는 경상국립대 인테리어재료공학과,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조현진한지연구소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실물 ‘시권(시지에 답안이 작성된 것)’ 33점, 한국학자료센터의 디지털화 시권 267건을 분석해 제조법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시지의 모양은 가로형·세로형 두 가지이며, 가로형은 세로형을 2장 이상 이어 붙여 제작됐다. 세로형의 평균 크기는 가로 81㎝ 세로 124㎝로 현재 생산 중인 일반적인 전통한지(세로 63㎝ 가로 93㎝)보다 컸다.

종이의 크기로 비춰볼 때 시지는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인 1조 방식의 한지 제조법은 지금은 사라져 사진으로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시지는 4~12겹 이상으로 제작돼 종이가 매우 두껍고 밀도가 높았다. 또 다양한 성분이 혼합된 전분을 활용했으며 특수 가공처리를 한 덕분에 표면이 매끄러워 먹 번짐 방지 효과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무형문화재인 신현세 한지장에게 시지 제작을 의뢰했다. 현재 한지를 뜨는 공정까지 마무리하고 전분처리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손영모 산림바이오소재연구소장은 “시지 제조기술 규명은 우수한 한지 문화 발굴과 한지 분야 저변 확대에 큰 의의가 있다”며 “고급 한지 제조기술을 응용한다면 부가가치가 높은 현대적인 새로운 용도 창출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