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3일간 빌려 쓰는 축제 “예술섬 중도, 다시 숲”

입력 2021-11-16 07:56 수정 2021-11-16 07:57

서울 도심(都心)에서 경춘로를 따라 100㎞ 정도 달리면 춘천 <중도 섬>을 둘러볼 수 있다. 고층아파트와 빌딩이 춘천의 자연 사이로 들어서고 있는데도 소양강 처녀 뱃사공의 물길은 여전히 흐른다. 이 소양강 줄기를 따라 수변의 아름다운 전경을 그려내고 있는 춘천 의암호의 섬이 하중도 생태공원(섬)이다. 하중도는 선사시대 흔적을 볼 수 있는 데다, 자연환경과 생태환경 보존이 뛰어나 자연의 보물섬으로 불린다. 그런데, 섬 일부(91만6989㎡)가 잘라졌다. 강원도와 춘천시는 영국 멀린사와 세계 최대 규모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하면서 2022년 5월 개장을 서두르고 있고 공사 현장은 선사시대의 자연성과 거대 자본의 현대화가 묘한 전경(全景)을 이루고 있다.

땅을 파내고 자연을 할퀴는 굉음은 위기종인 ‘맹꽁이’ 서식지도 놀라 깨어나면서 반전이 됐다. 공사 현장 일부가 문화재 추가 발굴이 이루어지고 보존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공사는 더디기만 한데, 중도 섬의 일부가 잘려도 하중도 생태공원이 품어내는 자연(自然)은 당당하고, 그 길을 걷고 숨 쉬는 중도 섬은 투박하면서도 단아하다. 천연자연 하중도 생태공원에 들어서면 “아, 이런 곳이 있다니!” 하는 탄식이 흐르고 카메라는 섬길 따라 섬의 천연공기를 담아낸다.

이 중도 섬에서 <예술섬 중도 “다시 숲”(11월5일~7일, 예술감독 변유정) 축제가 열렸다. 춘천은 축제의 도시다. 춘천인형극제는 1회 때(1989)부터 참여를 했었는데, 춘천의 대표적인 축제가 되었고 춘천마임축제, 춘천연극제, 노리 숲 축제 등 다양한 공연문화와 축제, 관광의 도시로 인식되는 춘천이다. 축제와 문화를 대하는 춘천문화재단의 성과다. 재단의 맹준재 팀장(도시특화팀)은 “춘천의 문화도시 이미지를 앞으로는 춘천 시민들이 직접 느끼고 체감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 3일간 빌려 쓰는 축제 “예술섬 중도, 다시 숲”으로 되돌려 드립니다.

<중도 섬> 생태공원을 3일간 빌려 쓰겠다고 한다. <예술섬 중도, 다시 숲>의 고향 춘천을 정중하게 대하는 예술감독의 태도가 묻어 있다. 천연생태 환경과 천혜 자원을 품고 있는 침묵의 중도 섬 스스로 말하는 축제로 표현하겠다는 의미다. 인간과 자본에 훼손되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라며 자연환경 파괴와 환경오염을 경고하면서도 자연의 섬은 쓰레기로 덥혀진 인간의 몸을 치유하고 삶과 죽음에서 다시 생동하는 삶으로 회복해 되돌아가야 할 자연의 땅이 된다.


축제의 장점은 직접성과 현장성인데 수 천 년 버텨내고 있는 자연의 숲 전령(傳令)들이 깨어나 숲의 바람과 자연이 소리를 내는 은유적인 축제라 각별하다. 자연과 바람들이 예술가들과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섬, 숲, 생태 환경의 치유와 복원의 경고음을 울리며 섬 숲의 전령들이 축제의 길들을 연결한다. 지난해 춘천문화재단이 2020 문화도시 예비 사업 일환으로 <어바웃 타임 중도 “치유의 숲”>을 주제로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공모를 통한 예술가들의 주제별 영상으로 축제를 치렀고, 올해는 변유정 예술감독이 중도 섬을 1년에 3일간 빌려 쓴다는 마음으로 축제를 구성했다.

이번 축제가 국내 공존하고 있는 공연예술축제 보다 특별한 축제로 인식된 것은 자연의 공간(숲)에서 장르의 특징과 예술성을 들어내는 축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독립 프로그램은 중도 섬의 숲길과 연결되고 주제를 관통해 자연, 생태, 숲을 키워드로 중도 섬의 통증과 침묵을 연결한다. 무대 공간은 숲이며 작품 주제를 하나로 모으고 그 의미는 자연의 숲으로 용해된다.

장소 특정형(Site Specific) 연극처럼. 섬과 숲은 연극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와 주제공연 <다시 숲: 폐허의 꽃>(연출 정안나) 는 지금의 중도 섬을 소리로 표현해 현재화하고, 숲의 공간배치와 예술가들의 선율은 전령으로 분한 배우들의 섬세한 표현들과 자연의 멜로디로 <예술섬 중도, 다시 숲>으로 생태 숲의 자연을 마주하게 만든다.

주제 공연 전 개막공연으로 쵸크24의 입체낭독극 <개똥영감의 열반>(장태준 연출)을 섬 공원 내 버드나무 앞에서 무대를 만들고 공연되는데, 이 수백 년 된 버드나무가 흥미롭게도 극의 배경을 자연의 입체성으로 투영하고 있다. 개똥영감의 열반은 1949부터(대약진 운동) 1980년대 중국 개혁 개방 운동까지의 중국 현대사를 그려내며 개똥영감(쳔허샹)의 삶과 가족사를 투영하고 있는 류진원으로 작품(1985)이다.


배치된 간이 무대를 입체적인 공간으로 장면과 상황, 인물의 감정의 특징과 의미를 낭독극으로 부각하기 위해 공간을 평면과 대칭 구도로 변화를 이루며 입체적인 라디오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배우들은 낭독극의 특징을 살려내었고 쳔허샹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중심으로 서사에 충실하게 다가섰다. 특히 대사의 감정 처리가 간결하면서도 장면의 특징을 포착해 입체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내었는데, 개똥영감(양흥주 분)과 나레이션, 치사오밍(김규리 분) 역을 맡은 두 배우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 전령과 은유의 축제, 삶과 예술의 공존

낭독극이 끝난 뒤 1시간 뒤 주제 공연(다시, 숲: 폐허의 꽃)이 진행되는데, 변유정 예술감독은 섬과 숲을 전체 공간으로 활용하는 시도를 한다. 숲의 입구에서 축제 상징물인 오태원 작가의 대형 물방울 오브제 설치를 보게 된다. 물방울은 <영혼의 물방울 2>이라는 주제로 숲 한가운데 떠 있는데, 거대 자본과 현대화로 말라가는 소양강 줄기의 물방울이며 중도 섬 역사의 물방울이다. 물은 치유이며 파괴된 환경과 자연을 정화하고 복원해야 할 처녀 뱃사공의 소양강 물줄기로 이 작은 물방울은 생명의 강을 이루게 된다.

인간과 자본으로 훼손된 자연의 생태는 더 이상 흐르지 못한다. 물방울이 하늘을 향해 허공에 멈춰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방울은 흘러야 생명이 되고 역사가 된다. 작가는 이번 축제의 주제를 다시 숲과 강으로 흘려보내야 할 자연과 숲의 생명을 물방울로 그려내고 그 아래로 중도 섬 숲의 전령들이 살아가는 자연으로 들어가기 위해 50여 명의 관객은 이동식 객석 의자에서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린다.


한 아이를 데리고 전령(배우)은 작은 놋 주발 정주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숲길이 열리고 그 길은 마치 인간의 발길이 끊긴 원시의 숲으로 들어가기 위해 인간의 오염을 정화하는 의식 행위를 거치며 숲의 길은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된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마치(꿈, 미지의 문)으로 전령을 따라 이동을 하게 되는데, 숲의 길은 6개의 숲의 길(피아노의 숲, 콘트라베이스의 숲, 바이올린의 숲, 무용가의 숲, 부토와 아쟁의 숲)과 폐허의 섬을 돌아 다시 현실과 삶의 길로 연결된다. 전령을 따라 이동하게 되면서 독립되어 있는 숲의 길은 중도 섬 전체 길로 연결되고 원시적 자연성에 중독된다. 예술가들의 소리와 몸짓에 마법이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데 숲의 전령들 축제에 초대된 경험을 하게 된다.

걸으면서도 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볼 수 없었던 숲의 거대 녹지에 놓여진 그랜드 피아노에서는 전상영 피아니스트와 숲에서 펼쳐지는 아이(민정아)의 연주(모차르트 작은별)를 듣게 된다. 아이는 순수와 자연이다. 중도 섬과 숲이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이다. 콘트라베이스(연주 김형준)는 숲의 바람 소리를 모으고 강렬한 자연의 소리와 협주를 하며 바하를 자연의 소리로 들려낸다. 마치 오래전부터 연주자들이 섬 숲에서 살아온 것처럼 자연과 동화되고 숲과 자연이 되어 소리를 내는 것이 흥미롭다. 숲의 소리가, 나무의 울림이, 역사의 숲과 그 길가에 베어 있는 소리처럼 말이다. 특히 바이올린의 숲(박진희, 기타, 김도윤)을 지나면 무용가의 길(숲)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 무용가의 길이 특별하게 중도 섬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싸고 체험하는 특별한 시간을 느끼게 해준다.

호수를 바라보는 섬 길은 무대가 되고 폭 2미터 좌우 (100여 미터) 사이를 무대 공간화 해 <숲의 향기>(김지희), <마주하기>(김상나), < I do too>(안형국)의 현대무용과 춤 사위는 자연과 숲,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마주 시키며 격렬한 역동성을 들어내고 중도 섬이 자연의 원시성으로 회복되어야 할 강렬한 의미를 담는다. 이들을 따라 이동하면 생명과 숨결이 파괴되고 더 이상 자연의 숨길을 느낄 수 없는 인공 고목 사이로 <부토와 아쟁의 숲>이 연결된다. 부토(홍라무)의 표현성과 아쟁연주(김남국)가 눈길을 끌었는데, 부토의 전위성은 그로테스크한 육체 표현으로 삶, 죽음, 영혼, 자연성을 아쟁연주와 즉흥적 콜라보를 이루며 삶과 죽음이 자연의 원시성으로 보존되고 치유되어야 할 <중도 섬, 다시 숲>으로 홍라무의 행위와 몸짓은 살아 숨 쉬는 숲과 자연의 토양으로 그려낸다.


이어 숲의 길 밖으로 이동한 관객들은 마지막 폐허의 섬 주제 공연을 체험하게 되는데, 대형 굴착기가 보이는 레고랜드 공사 현장을 마주하는 특정 장소에서 인간이 환경오염으로 쓰레기 더미가 되어버린 형상화를 하고 있다. 나무 사람으로 의인화된 배우는 “플라스틱!!(중략) 이게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어. 어디에서나 있거든 하지만 곧 부메랑이 되어 당신을 덮칠 거야. (중략) 당신은 이미 고통 받고 있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가고 이 아름다운 대자연이!! 생태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어. 우리 지금 멸종의 시작점에 서 있는 거야!!” 전령들과 걸었던 5개의 숲의 길은 <다시 숲, 폐허의 꽃>(연출 정안나) 주제 공연을 마주하면서 축제 의미를 눈치채게 된다. 숲의 길은 주제 공연과 연결되고 다시 <치유의 숲> 길로 연결되면서 각 숲의 연주와 공연들은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숲 한가운데서 쏟아지는 장면과 대사들이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인간은 전령들과 숲으로 걸어 들어가고 숲에서 들리는 바람, 숲, 새, 사람의 소리로 분한 배우들은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거야, 숲이 쉬는 숨이 느껴져?” 육체가 쓰레기가 되어 죽어가는 한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이 숨을 쉬고 살아갈 수 있는 중도 섬과 숲은,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게 된다. 이 길을 지나면 세상 밖은 플라멩코의 축제 섬으로 피아노 소리가 연주되는 자연으로 숲으로 치유된다.

특히 주제 공연에서 배우들의 자연 공간에서의 놀라운 집중과 숲의 길을 연결한 아티스트들이 <예술섬 중도, 다시 숲>의 길로 연결시켜 ‘3일간 중도 섬을 빌려 쓴’ 변유정 예술감독은 365일 보존해야 할 중도 섬 숲으로 돌려주었다. 내년부터는 소양강 물줄기를 따라 중도섬 전체가 자연의 축제로, 은유의 축제로 누구나 중도 섬을 빌려 쓰고 싶은 축제가 되길.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