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플라스틱에서 실 뽑는다… ‘리사이클링 섬유’의 세계

입력 2021-11-16 06:32 수정 2021-11-16 15:04
플라스틱 재활용 섬유 그래픽. 국민일보DB

패션 브랜드 ‘노스페이스’ ‘내셔널지오그래픽’ ‘커버낫’이 올해 가을·겨울(21FW) 시즌을 겨냥해 내놓은 신상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효성티앤씨의 ‘리젠서울’을 활용해 만들었다는 점이다. 리젠서울은 서울 금천·영등포·강남구 등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에서 뽑은 섬유다. 효성티앤씨는 제주도와 손을 잡고 바다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을 ‘리젠제주(regen®jeju)’와 ‘리젠오션(regen®ocean)’ 등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처치 곤란’ ‘천덕꾸러기’ 폐플라스틱이 리사이클링 섬유라는 옷을 입고 있다. 화학업체들은 플라스틱을 폐기·소각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섬유, 특히 플라스틱 재활용 섬유에 주목한다. 친환경 섬유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다만 사업성이 본격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 어렵다. 산업계에선 기술 발전 수준 등에 따라 시장성이 더 확대할 것으로 본다.

16일 한국화학섬유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섬유인 폴리에스터의 지난해 생산량은 전년 대비 1% 감소한 5710만t에 그쳤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같은 기간에 리사이클(재활용) 폴리에스터 섬유의 생산량은 전년 대비 6.3% 늘어난 840만t을 기록했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는 전체 폴리에스터 섬유시장에서 14.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현재 대부분의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는 주로 폐페트병을 사용한 ‘물리적 재활용’을 가장 널리 적용하고 있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의 99%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수거한 재료를 잘게 파쇄하는 등 가공을 거쳐 재생칩으로 만든 뒤 원사(실)를 뽑아낸다. 이밖에 해양폐기물, 폴리에스터 폐직물과 같은 ‘소비 후(Post-consumer) 플라스틱’이나, 직물 스크랩과 같은 ‘소비 전(Pre-consumer) 가공 잔류물’에서도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를 얻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모델이 효성티앤씨의 리사이클 섬유 '리젠서울'이 적용된 2021년 가을 신상품 의류를 착용하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제공

재활용 섬유 제품을 활발하게 생산하는 대표적 기업은 효성이다. 효성티앤씨의 친환경 섬유 매출액은 올해 1~9월 450억원으로 2016년 전체 매출(30억원)보다 10배 이상 성장했다. 효성티앤씨는 2008년 처음으로 친환경 섬유 ‘리젠’을 선보인 뒤 국내 친환경 섬유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리젠은 원사 1㎏당 500㎖ 페트병 50개를 재활용할 수 있다. 효성티앤씨는 폐어망을 재활용한 나일론 ‘마이판 리젠’,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리젠’, 재활용 스판덱스 ‘크레오라 리젠’ 등으로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태광산업은 친환경 원사 ‘에이스포라 에코’, 나일론 폐기물을 재활용한 ‘리사이클 나일론’, 페트병을 재활용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리사이클 나일론’ 등을 생산한다.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은 최근 임직원에게 국내 최초로 국내산 해양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작업복을 전달하기도 했다. 삼라마이다스(SM)그룹의 자회사인 티케이케미칼은 국내산 리사이클 폴리에스테르 ‘에코론’을 만들고 있다.

휴비스 에코에버 CR 원사. SK케미칼 제공

화학업계는 최근 ‘화학적 재활용’으로 시선을 옮기는 중이다. ‘물리적 재활용’과 달리 열분해 등 화학적 기술을 활용하면 플라스틱 활용 범위가 넓어진다. 반복해서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SK케미칼은 조만간 고품질의 케미칼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원사 ‘에코에버(ECOEVER) CR’을 내놓을 예정이다. SK케미칼이 화학적 재활용 페트(CR PET)를 생산해 공급하면, 휴비스가 이를 활용해 원사를 뽑아낸다.

산업계는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친환경 섬유시장이 날개를 달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글로벌 친환경 섬유시장이 연간 10%씩 성장할 것으로 추산한다. 2025년 약 700억 달러(약 83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한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한계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원료인 폐플라스틱의 안정적 확보다. 현재는 대만 일본 중국 등에서 폐페트병 등을 가공해 만든 칩을 수입해 원사를 뽑고 있다. 원료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 때문에 국내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또한 리사이클링 섬유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배출된다는 지적도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입자의 플라스틱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해양 환경을 오염시킨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와 파타고니아가 공동으로 진행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플라스틱을 원료로 한 합성 폴리에스터 제품을 세탁할 때마다 미세플라스틱이 방출된다.

이에 LG화학, CJ제일제당 등은 옥수수 성분을 활용해 만든 ‘생분해성’ 친환경 소재를 운동화, 의류, 가구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