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무원 ‘저금리 대출 쇼핑’에 금리 통계마저 왜곡

입력 2021-11-15 18:10 수정 2021-11-15 19:28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옥죄기로 대출금리가 급격히 상승하기 직전에 일부 공무원들이 ‘특혜성 대출 쇼핑’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들이 연 1%대 금리로 무더기 신용대출을 받으면서 금리통계 왜곡 현상까지 나타났다. 반면 서민들은 서민전용대출상품 금리가 오른다는 소문에 새벽부터 은행 지점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15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신한은행의 9월 한도대출(마이너스통장) 평균금리는 연 2.86%였다. 5대 시중은행 중 나머지 4개 은행은 연 3.64~3.81%를 기록했는데, 유독 신한은행만 크게 낮았다. 8월 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한은행의 9월 평균금리 폭락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통계 왜곡 현상은 저신용자의 대출금리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5월 신한은행 신용도 9~10등급 고객의 평균 한도대출금리는 연 2.82%로 최고 신용도를 가진 1~2등급 금리(연 2.93%)보다 낮았다. 반면 9월에는 9~10등급 신용자의 대출금리는 연 14.00%로 치솟았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신한은행과 대출협약을 맺은 일부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 직원들이 은행의 대출 제재 일정에 맞춰 사전에 대출을 싹쓸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증가율 억제 기조에 발맞춰 시중은행은 대출 한도제한·금리인상 절차를 밟아왔다”며 “신한은행은 이런 조치를 9월 10일쯤부터 시작하기로 내부 결정을 내렸는데, 이 사실이 외부로 유출돼 저금리 혜택을 보는 고객들이 대거 ‘대출 쇼핑’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도 제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대출 수요자들이 저금리 대출을 무기 삼아 연 소득의 수 배씩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제 신한은행은 국세공무원 2만명에게 평균 연 1.70% 금리(지난 4월 기준)로 최대 2억원까지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다. 최근 한도가 연 소득 이내로 제한됐지만 기존에 2억원을 대출받은 국세공무원은 감액 없이 대출 연장을 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은 “국세청과의 기존 협약 내용에 따라 대출을 내줬을 뿐”이라며 “다만 대출 최대한도가 제한될 것을 우려한 일부 고신용 대출 수요자들이 9월 한 달 동안 일시적으로 몰려들며 전체 평균금리를 끌어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같은 ‘힘 있는’ 집단에 대한 특혜성 대출은 비단 신한은행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중은행들은 법원과 검찰, 경찰 등과도 저리 대출 금융협약을 체결, 시행 중이다. 10년 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농협은행으로부터 금리 연 1%대 1억원의 신용대출을 받은 경제부처 모 과장은 현재도 같은 조건으로 이 상품을 이용 중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5대 시중은행에서 연 1.5% 미만 초저금리 신용대출을 받은 11만1739명 가운데 극소수를 제외한 11만197명(98.6%)은 공무원이었다.

반면 서민들은 조금이라도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8일 주택금융공사의 ‘내집마련디딤돌대출’ 금리가 오를 예정이라는 소문이 퍼진 이후 이날까지 이 상품을 취급하는 전국의 우리은행 지점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한 대출희망자는 “우리은행이 한 점포당 하루 30명씩 심사를 제한한다는 말에 어제 새벽 4시에 나왔지만 31번 대기표를 받고 집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특혜성 대출에 금리통계가 왜곡되고 서민들은 전용상품마저 대출받기 어려운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시장 자율성을 존중한다면서 손을 놓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최근 “시장에서 결정되는 금리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일반인보다 공무원의 복리후생이 더 좋아진 상황에서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특혜성 대출을 해 줄 이유가 없다”면서 “적정 가격 이하 수준으로 대출이 취급되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일반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만큼 공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훈 김경택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