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EU 싸움에 ‘체스 말’ 된 난민들…겨울 오는데 숲에 방치

입력 2021-11-15 17:29 수정 2021-11-15 17:44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한 벨라루스 그로드노 지역에 몰려든 난민들이 14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적십자사 직원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받고 있다. 폴란드와 서방 국가들은 벨라루스가 유럽에 타격을 주고자 이들의 유럽행을 기획했으며, 그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벨라루스와 유럽연합(EU) 간 정치적 충돌에 휘말린 난민들이 열악한 환경에 고립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다.

14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은 벨라루스에서 서유럽으로 넘어가려는 난민들이 폴란드 국경을 넘지 못하고 벨라루스의 숲에 방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벨라루스 관계자에 따르면 폴란드 쿠즈니차와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 그로드노 지역의 숲에는 국경을 넘지 못한 약 2000명의 난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수용소가 아닌 임시 피난처에 머물며 체온 유지를 위해 땔감을 겨우 구해 버티고 있다.

이들이 숲에 고립된 건 EU의 각종 제재에 반발한 벨라루스가 고의적으로 난민들의 이주를 지원하면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벨라루스 보안군은 난민들에게 EU 국가로 건너가는 방법을 지시하고 국경 울타리를 뚫을 수 있는 절단기와 도끼까지 나눠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수백명이 한꺼번에 몰리자 폴란드는 군인과 경찰 1만5000여명을 투입해 빗장을 걸어 잠갔고, 미처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이곳에 남게 된 것이다. 벨라루스와 EU가 벌이는 싸움에 난민들이 ‘체스판의 말’로 동원된 셈이다.

문제는 다가오는 겨울이다. 이번 주부터 이 지역에는 비 소식이 예정돼 있으며 저녁 기온은 0도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이미 추위로 인한 사망자도 다수 나왔다. 난민들 중엔 여성과 아이들이 800명에 달하고 환자들도 많아 국경 대치가 길어질수록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벨라루스 적십자사는 난민들에게 식량과 물을 공급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CNN에 앞으로 일주일 안에 이주민이 5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벨라루스와 EU의 충돌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EU는 난민 사태를 촉발한 벨라루스를 제재하기로 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역내 외무장관 회의에서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를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벨라루스는 이에 즉각 반발했으며, 이번 사태의 배후로 의심 받는 러시아와 연합 공수 훈련을 벌이는 등 군사적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