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여군 하사 강제추행 후 사망→‘스트레스 자살’로 축소”

입력 2021-11-15 16:24

공군이 극단적 선택을 한 여군 부사관의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인지하고도 ‘스트레스성 자살’로 사건을 축소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상관의 성추행과 군의 2차 가해로 사망한 고(故) 이예람 중사의 사건으로 논란이 일자, 공군이 같은 시기 비슷한 사건을 감추려고 했다는 것이다.

군인권센터는 15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월 강원도 원주의 공군 8전투비행단에서 여군 하사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에 관해 “공군이 사망 원인을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으로 판단하고 한 달 만에 종결했다”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공군이 수사 과정에서 A씨의 상급자인 이모 준위의 강제추행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이를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센터에 따르면, 이 준위는 5월11일 A씨가 출근시간 30분 전에도 부대에 나타나지 않자 부대 주임원사와 함께 A씨의 집에 직접 찾아갔다가 A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군 경찰은 이 준위가 경찰을 부르지 않고 직접 A씨 집으로 들어간 뒤 물건을 뒤진 점을 수상하게 여겨 심문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연합뉴스

이 준위는 심문에서 3월과 4월 두 차례 A씨의 볼을 잡아당겼으며, A씨가 “얼굴 만지는 거 싫다”며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고 자백했다. 이 준위는 “성적인 접촉이 아니었다”고 진술했지만 거짓말탐지검사에서 거짓으로 판정됐다. 수사 과정에선 이 주위가 피해자 숙소와 그 근처를 7차례 방문하고 업무와 상관없는 메시지와 전화 연락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준위의 수상한 행적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이 준위는 A씨가 사망하기 이틀 전인 5월9일 자신의 차에서 20분간 A씨를 만난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기록을 삭제했고 이날 A씨와 통화한 기록도 삭제했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당일에는 출근 시간 30분 전부터 23차례 전화를 걸기도 했다.

하지만 군 경찰은 A씨의 변사사건 수사 결과 보고서에 사망 원인으로 ‘보직 변경으로 인한 업무 과다’와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만을 적었다. 수사로 드러난 강제추행 사실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 준위는 군 검찰의 별도 수사를 통해 공동주거침입 등의 혐의로만 기소됐다.

A씨의 유가족들은 의구심을 품고 이 준위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공군 보통검찰부는 유족들이 수사기록 정보공개를 청구하고나서야 이 준위를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입건했다. 군 검찰은 당시 이 준위의 강제추행 입건 이유에 대해 “(유족이 수사를 요청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를 조사하다 보니 강제추행 소지가 있어 입건했다”고 설명했다고 센터는 전했다. 유가족은 지난달 14일 군 검찰이 이 준위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한 뒤 공소장을 확인하고서야 딸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군인권센터는 “강제추행 사실을 수사 과정에서 인지했음을 숨기고 주거침입 등만 기소했다가 뒤늦게 슬그머니 강제추행 건을 입건한 것”이라며 “이 중사 사건에서 보여준 부실한 초동 수사와 매우 유사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중사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와 합동위 활동이 모두 종결된 후 국민의 관심이 군 성폭력 이슈에서 멀어질 때쯤, 사망과 강제추행이 연결돼있다는 것이 티나지 않도록 별도 기소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