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려동물 인구가 늘면서 대형견 등에 의한 개물림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하루 6명씩 개물림 피해가 발생한다는 통계도 있다. 개물림 사고 피해자들은 목줄이나 입마개 없이 맹견을 풀어놓는 것은 사실상 살인미수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각에서는 5대 맹견에 대해서만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한 동물보호법이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견주가 목줄 착용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 과태료 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9월 서울 노원구 반려견 놀이터에서 발생한 개물림 사고는 일부 견주의 관리 부실 실태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30대 여성 A씨는 노원구청이 관리하는 반려견 놀이터에서 목줄이 풀린 대형견에 물렸다. 사고로 발목뼈가 드러났고 신경치료도 받았다. A씨는 여전히 병원 치료를 받는 중이다.
A씨는 자신의 SNS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당시 견주는 “개들을 사랑해서 풀어놨다.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A씨는 “믹스견으로 기본적인 접종도 안 된 개였다. 개를 너무 사랑하셨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접종도 안 시키고 반려견 놀이터 입구에 풀어두시다니 정상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인가”라고 분노했다.
A씨는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견주가 기초생활수급자라면서 개 5마리도 본인의 손을 떠났으니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 법대로 해라”라고 말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A씨는 “아이들도 오는 반려견 놀이터에서 그렇게 개를 풀어놨다는 것은 살인사건이나 마찬가지”라며 “중대형, 소형견, 맹견 상관없이 입마개가 필요한 개는 외출 시 견주들이 철저히 입마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해도 처벌이 약해서 피해자가 피해자로 남게 되는 일이 더 많다”며 “정말 강력한 법과 처벌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개물림 사고는 최근에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는 50대 여성이 산책하던 중 대형견에게 공격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북 영천에서는 80대 피해자가 이웃집 개에게 팔과 다리를 물려 중상을 입었다. 부산에서는 반려견 목줄을 하지 않는 문제로 이웃 주민과 갈등을 빚던 견주가 개를 풀어 주민들을 다치게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윤재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와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개물림 사고는 총 1만1152건 발생했다. 하루 평균 6건꼴이다. 이 중 응급실 진료가 필요한 ‘잠재응급’ 이상 환자는 97.7%(1만893명)였고 의식장애, 호흡곤란, 심정지 등 중증외상 환자도 20.9%(2339명)에 달했다. 해당 통계가 주인이 있는 개인지는 따로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개물림 사고 피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 경북 문경시에서는 산책 중이던 모녀가 견주가 풀어놓은 개 6마리(그레이하운드 3마리, 혼종견 3마리)에 물려 뇌출혈 등 중상을 입었다. 당시 개들은 목줄과 입마개를 하지 않았고 견주는 경운기를 타고 따라오는 중이었다.
가족들은 맹견으로 등록되지 않은 대형견도 법적으로 목줄과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청원인은 “어머니는 병원 이송 당시 혈압이 50까지 떨어져 의식이 없는 위중한 상태였고, 누나 역시 온몸이 뜯겨 처참한 모습이었다”며 “이 사건은 과실치상이 아니라 살인미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재판에서 견주는 중과실 치상 등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동물보호법상 입마개 착용 의무대상 견종은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로트와일러 5종이다. 문경시 개물림 사고를 낸 그레이하운드는 사냥개의 일종인데도 입마개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다만 맹견이 아니더라도 현행 동물보호법상 3개월령 이상 반려견은 외출 시 반드시 목줄을 착용해야 한다. 반려동물에게 목줄을 하지 않아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또는 맹견 관리를 잘못해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에는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일정 무게 이상의 모든 중대형견에게 입마개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추진되기도 했다. 다만 견주들 사이에서는 모든 중대형견이 위험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형견도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을 경우 사람을 공격하는 등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입마개 의무화가 개물림 사고 방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동물보호법상 개의 크기와 상관없이 외출 시에는 반드시 목줄을 해야 한다. 1차 적발 시 20만원, 2차 30만원, 3차 50만원이다. 개물림 사고 대부분이 목줄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하고 있는 만큼 목줄을 하지 않는 견주에 대한 단속 및 과태료 처분을 실질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반려동물 인구가 급증한 만큼 반려견을 키우는 견주들에 대한 안전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청원인은 “단순히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개에게 입마개를 채우자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법”이라며 “입양 전 필수교육과 등록제(반려면허) 강화 및 최저가 가격 설정, 반려견 안전교육 의무화, 나아가 반려견에 대한 세금징수가 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