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미국 정치 지형을 흔들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승리 원천이었던 중도 성향, 무소속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등을 돌리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식료품이나 휘발유, 난방, 주거비 등 생활 필수 영역에 도드라져 나타나 이들 계층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당분간 인플레이션 수치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 공동여론조사에서 ‘오늘 당장 선거를 하면 어느 정당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51%가 공화당을 답한 것으로 14일(현지시간)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 응답은 41%였다.
중도층이나 저소득층에서의 지지 철회가 컸다.
자신의 경제가 좋지 않거나 나쁘다고 한 응답자 사이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율은 각각 28%, 63%로 나타났다. 공화당이 35% 우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번 응답자 중 83%는 2018년 중간선거 때 민주당을 지지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이들 응답자 사이에서 공화당 지지율은 14%에 그쳤다. 저소득층 사이에서 극적인 지지 변경이 발생한 것이다.
대표적 스윙보터로 꼽히는 무소속 층 이탈도 많았다. 자신의 정치 성향이 무소속이라고 밝힌 응답자 사이에서 내년 중간선거 가상대결 결과는 민주당 32%, 공화당 50%로 나타났다. 2018년 중간선거 때 이들 응답자 사이에서 양당 지지율은 각각 54%, 42%로 정반대였다.
이번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 역시 41%로 최저치를 경신했다. 무당층에서 부정 평가 비율이 45%까지 올랐다.
응답자 70%는 경제 전망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응답자 절반은 인플레이션의 직접적 책임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돌렸다. 현 정부 경제 정책 지지 응답은 39%에 그쳤다.
WP는 “정책 입안자들은 소비 급증과 공급 중단이 결합해 식품, 가스, 주택 같은 필수품 비용이 커지는 악마적이고 생소한 곤경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은 실제 저소득층일수록 더 큰 영향을 받는 구조다. 리처드 커틴 미시간대 소비자조사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인 하위 3분의 1은 임금 인상과 정부 지원으로 1년 전보다 훨씬 더 높은 소득을 보고했다. 하지만 저소득 미국인과 중산층 미국인 4분의 1은 소득이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해 생활 수준이 떨어졌다고 말한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이 실질 임금을 낮춰 저소득층의 체감 충격이 크다는 것이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지난달 임대료는 전달 대비 0.4% 상승해 최근 상승세를 이어갔다. 단독 주택 매매가격은 1년 동안 16% 상승했다.
커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은 많은 커뮤니티에서 끊임없는 대화의 주제이고, 특히 무당층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상황을 개선하는 데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전망도 밝지 않다. 닐 카시카리 미국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지금보다 더 높은 인플레이션 수치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시카리 총재는 이날 CBS 방송에서 “수학적으로 보면 인플레이션 수치가 줄어들기 전 앞으로 몇 달간 더 높은 수치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급등해 1990년 12월 이후 31년 만의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는데, 이보다 더 높은 물가상승률 통계를 볼 것이라는 설명이다.
카시카리 총재는 “의회가 팬데믹 극복을 위해 가족과 기업에 많은 자금을 제공해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동시에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공급 중단도 보고 있다”며 “상품 수요 급증은 정부의 경제 부양책과 코로나19 대유행이 동시에 국가에 미친 영향”이라고 말했다.
카시카리 총재는 그러면서 “사람들이 지금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는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두 사안은 모두 일시적”이라고 언급했다. 경기 부양책이나 팬데믹으로 이한 공급 중단 등 사안이 해결되면 인플레이션 수치가 안정적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카시카리 총재는 정상 수준으로 여겨지는 2% 인플레이션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인지 묻자 “수요와 공급 측면이 해결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며 낙관했던 연준 책임론도 점차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변명, 지속되지 않을 이유를 제시할 때마다 데이터는 이를 무너뜨린다”며 “연준의 변명이 바닥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메시지 관리에 나섰다.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CNN 방송에서 “물가가 높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미국인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집권을 시작할 때, 이미 경제는 위기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팬데믹과 경제는 연관돼 있다”며 세계적인 공급망 병목현상이 현재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CBS 방송에 나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팬데믹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싶다면, 코로나19의 유행을 종식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WP는 “바이든 대통령은 초당적 인프라법안이 공급망 문제를 개선할 것으로 설명했지만 항구나 수로를 개선하기 위한 자금이 구현되는 데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백악관은 인플레이션을 즉시 반전시킬 확실한 도구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