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휴가는커녕 제발 연차라도”…서러운 중소기업 직장인

입력 2021-11-14 19:53
국민일보DB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된 지난 7월부터 이달 12일까지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백신 갑질’ 제보 80건의 대부분은 중소기업 직원들 제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백신휴가나 접종 후 연차를 못 쓰게 하는 갑질이 반복되고 있다고 14일 지적했다.

직장인 A씨는 상사에게 백신휴가를 문의했다가 ‘개인 연차휴가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고 제보했다. A씨는 백신 후유증이 걱정되는 마음에 연차라도 써보려 했지만 상사는 접종 다음 날까지 보고서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결국 그는 아픈 몸을 이끌고 접종 이튿날 바로 출근해야 했다.

직장인 B씨는 백신을 맞은 뒤 열이 나 조퇴했다가 상사의 호통을 들어야 했다. B씨는 “백신을 맞고 돌아와 본인은 ‘아무 후유증이 없다’고 하던 상사는 내가 백신 후유증으로 조퇴하자 ‘미열인데 조퇴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기업들에 백신휴가를 권장했지만 어디까지나 강제가 아닌 ‘권고’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등은 백신휴가를 준수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갑질119는 “아무런 강제조항도 없는 정부의 권고를 지키는 기업은 소수”라며 “백신휴가가 일부 공공기관과 대기업 직원들의 전유물이 됐다”고 꼬집었다.

미국과 캐나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백신휴가제’를 도입해 접종 후에도 유급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재량에 맡겨 인력 구조가 열악한 중소기업일수록 혜택에서 소외되는 국내와는 다른 점이다.

직장갑질119는 “‘백신 갑질’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정부”라며 “대부분 나라처럼 백신을 접종한 직장인 모두에게 2~3일의 유급휴가를 의무화하고 이 비용을 정부가 지원했다면 백신 갑질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접종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제보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직장인 C씨는 백신 미접종자라는 이유로 최근 회사에서 ‘투명인간’이 됐다. 그는 “과거 백신 부작용을 심하게 겪어 코로나19 백신을 못 맞고 있는 건데 상사는 무조건 비난하고 밥도 같이 못 먹게 해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