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450만대? 정부의 친환경차 과속에 업계 ‘울상’

입력 2021-11-15 06:15

2030년까지 전기차와 수소차를 합쳐 친환경차 450만대를 보급한다는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 자동차 업계가 울상 짓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친환경차 보급이 대폭 확대된 건 사실이지만, 불과 9년 이내에 현재 보급대수보다 무려 스무 배 넘게 설정된 목표치를 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무리한 목표를 충족하려다 자칫 자동차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업계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말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안을 확정하면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목표에 따라 전기차와 수소차를 총 450만대까지 보급한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 목표치는 현재 국내 전기차, 수소차 보급 대수의 20배가 조금 넘는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 수소차는 각각 20만1520대와 1만7076대로 합쳐서 약 22만대 수준이다.

현 정부 출범 직전까지만 해도 국내 전기차, 수소차는 합쳐서 겨우 1만대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구매보조금 지원과 충전 인프라 확충 등 지원 정책으로 올해 20만대를 돌파하며 20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5년간의 증가율만 놓고 보면 9년 안에 전기차, 수소차 보급을 현재보다 20배 이상 늘린다는 정부 목표가 큰 무리는 아닌 듯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 준비 상황을 볼 때 2030년까지 전기차, 수소차 450만대를 보급하는 건 솔직히 어렵다”고 말했다. 우선 구매보조금 폭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는 부담이 있다. 일반 전기차의 구매보조금은 2019년 900만원에서 지난해 820만원으로 감소하는 등 점차 감소세다. 정부는 현재 80%인 공공부문 전기차, 수소차 의무구매비율을 2023년부터 100%로 확대키로 했지만,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을 다 합쳐도 차량 보유 대수는 12만여대 수준에 그친다. 한 전문가는 “자동차란 게 한 번 사면 평균 10년은 이용한다는 특성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늘어난 만큼 앞으로 친환경차 보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목표치가 업계의 생산 능력을 웃돈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서는 부품 개발과 시설 투자 등 여건을 고려할 때 2030년까지 최대 보급 가능한 전기차, 수소차는 300만대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이상으로 친환경차를 보급하려면 결국 해외 전기차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려다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입 전기차 보급이 늘면 그만큼 내연차 생산 국내 업체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런 업계의 우려를 의식해 연내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에 따른 고용 충격 대책을 추가로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친환경차 보급 목표치 수정은 검토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