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기존 ‘여의도 문법’을 탈피한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노사가 대립하는 산업현장 등 정치인들이 꺼려하는 장소도 마다하지 않고 방문하고 있다. 경기지사 시절 무기였던 추진력과 중재력이라는 강점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다.
부산·울산·경남 지역민생탐방 중인 이 후보는 14일 거제 대우조선소를 찾았다. 대우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과의 합병 문제를 두고 노사가 대립 중이다.
이 후보는 “사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장에는 가지 말고 피하라’고 하는 게 정치권의 좋지 않은 전통”이라며 “해답이 없으니 소통도 포기하고 또 갈등이 격화되는 게 일상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경영진을 만난 자리에서는 “당에서도 노동자들이 면담하자는 걸 안 해줬다는데, (답이 없을 때는) ‘답이 없다’는 얘기도 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와 경영진을 잇달아 면담한 이 후보는 “사실 ‘합병하냐 마냐’라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는 구조조정으로 ‘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거 아니냐’가 큰 문제일 것이고, 지역주민들 입장서는 ‘협력 하청업체 정리할 때 지역경제 악화될 것 아니냐’는 걱정이 클 것”이라며 쟁점을 정리했다.
이 후보는 이어 “거제·경남 지역이 현대중공업으로부터 홀대 당하면서 부당하게 불이익 받는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찾아보고, 구조조정 문제도 감내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우리 사회가, 심지어 대통령 후보도 약속을 안 지키는 경우가 너무 당연한 것처럼 돼 있어서 (노조와 시민단체는) 그런 불신,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다만 합병을 결정한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후보는 “(거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게 있었으면 피했겠나. 노력했을 것”이라며 “(조선업이) 모두 망하냐 하나라도 사느냐 상황에 직면했던 당시로선 통합합병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정치인의 역할은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중재·조율하는 데 있다는 게 이 후보의 지론”이라며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에도 첨예한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풀어냈었다”고 말했다. 성남시장 시절 모란시장에서 개도살장 철거, 경기지사 때 불법 계곡시설물 철거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난 12일부터 부울경 지역을 순회한 이 후보는 또다시 말실수로 부산지역비하 논란을 자초했다. 이 후보는 전날 부산 영도 무명일기 카페에서 지역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부산은 재미없잖아, 솔직히”라고 말했다. 지역이 혁신인재를 흡수하기 위한 방안을 설명하던 중 나온 발언이다.
이 후보는 실언임을 의식한 듯 “재미있긴 한데, 강남 같지는 않은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젊은이들에게는”이라고 말을 바로잡았다.
야당은 이 후보의 실언을 꼬투리 삼아 즉각 반발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 김병민 대변인은 논평에서 “부산 지역을 폄훼하는 발언을 한 것인데, 그 속내가 놀라울 따름”이라며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 후보의 계속되는 실언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중진의원은 “대선 후보라면 말에 신중해야 한다”며 “지금 민주당이 윤 후보의 말실수나 기다릴 처지가 아니다”고 했다.
거제=정현수 기자, 오주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