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75조원 소유한 창시자 사토시 베일 벗겨지나

입력 2021-11-14 14:37 수정 2021-11-14 15:15
비트코인 지지자들이 세운 나카모토 사토시 조각상. AFP연합뉴스

최근 ‘디지털 금’이라고 불리며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베일에 싸여있다. 사토시가 가지고 있는 비트코인은 약 100만 개로 현재 시세로는 640억 달러(약 75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사토시는 호주의 컴퓨터 공학자 크레이그 라이트(51)였다. 그가 비트코인 개발에 참여한 정황 증거들이 나오면서 지난 2016년 자신이 비트코인의 창시자라고 인정했지만, 그가 사토시라면 쓸 수 있는 100만 개의 비트코인이 담긴 전자지갑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비트코인 업계에선 라이트를 사토시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라이트는 여전히 본인이 사토시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유력한 사토시는 라이트와 함께 개발에 참여했던 것으로 드러난 미국 컴퓨터 포렌식 전문가 데이브 클라이먼(2013년 사망)이다. 최근 이들의 유족들이 라이트를 상대로 100만 개의 비트코인 중 절반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제기하면서 다시 ‘사토시는 누구인가’에 관한 진실 공방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이 소송에 대해 보도하면서 사토시의 정체에 주목했다. WSJ에 따르면, 이 소송에서 클라이먼의 유족들은 라이트와 클라이먼 두 사람이 처음부터 비트코인 개발에 관여했고 함께 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할 계획이다. 이들은 2008년 초 라이트가 클라이먼에게 비트코인을 처음 공개할 때 사용한 백서 작성과 관련해 도움을 요청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협업해 함께 백서를 쓰고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데이비드와 라이트는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W&K 인포 디펜스 리서치(W&K Info Defense Research)라는 법인을 2011년 설립했으며, 데이비드가 비트코인 채굴에 대해 전적으로 총괄하고 있었다”며 “데이비드가 사망한 후 라이트는 각종 서류를 위조하고 허위 자료를 취합해 법인이 채굴한 비트코인를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라이트 측은 클라이먼이 친구였지만 동업자는 아니라고 부정하는 입장이다. 라이트의 변호인은 “법원이 그들이 동업 관계였다는 것을 나타내거나 기록할 것이 없다는 것을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

베일에 싸인 사토시는 지난 2008년 10월 31일 인터넷에 비트코인 시스템을 설명하는 9장짜리 백서를 올리면서 등장했다. 사토시는 소수의 후원자를 제외하고는 주목도가 낮았던 비트코인을 알리기 위해 인터넷 공간에서 지난 2010년 12월까지 활동하다가 돌연 자취를 감췄다. 비트코인이 흥행하자 사토시가 활동했던 시간과 말투를 두고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2014년 도리안 나카모토라는 인물이 진짜 사토시라는 보도가 나오자 “나는 도리안 나카모토가 아니다”라는 글을 올린 뒤 다시 사라졌다.

지난 2015년 IT전문매체 기즈모도는 익명의 제보를 통해 라이트가 진짜 사토시라는 정황증거들을 제시했다. 사토시와 관련된 사업용 계좌에는 크레이그 라이트라는 이름이 쓰였다는 것이다. 또한 비트코인을 공개하기 전인 2008년 3월에는 라이트가 클레이먼에게 “내년쯤 논문을 수정하기 위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트캐시 혹은 비트코인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화폐를 구상하는 중이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메일을 보낸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라이트는 사토시의 이름을 아이디로 사용한 ‘satoshi@vistomail.com’이라는 이메일 주소를 사용해 초기 비트코인 사용자와 개발자들과 정기적인 소통을 했다.

이런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라이트는 지난 2016년 5월 본인이 사토시라고 인정했지만, 정작 쉽게 인증할 방법으로 제시한 사토시의 전자지갑에 있는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를 두고 라이트가 본인이 얽혀있는 탈세 의혹을 빠져나가려고 사토시 사칭을 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썻지만 그는 “공개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증명을 포기했다.

비트코인 전문가인 제프 가직은 트위터를 통해 “사토시는 자신이 가진 비트코인을 사용하거나 PGP(암호화된 이메일)에 사용된 키를 공개하는 것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지만 사토시를 익명으로 두는 것이 훨씬 가치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