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과학고가 의학계열 대학에 지원한 졸업생들에게 지원됐던 장학금 1억여원을 회수했다.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라는 학교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내려진 조치다.
영재학교 졸업생이 의학계열에 진학하는 것은 그간 ‘장학금 먹튀’ ‘국민 혈세 낭비’라는 비판 대상이 돼왔다. 다만 장학금 환수 조치도 영재학교 학생들의 의학계열 진학을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14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이 같은 조치는 지난 2월 졸업생 중 23명(장학금 총액 1억2600여만원)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2018학년도 모집 요강이 마련된 뒤 처음 이뤄진 회수 조치다.
경기과학고는 영재학교진흥법에 따라 2013년 과학영재학교로 전환됐다. 수학·과학 등 이공계열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와 달리 의대 진학 학생이 늘자 2018학년도 신입생 선발 때부터 의대 지원 학생에 대해 장학금 회수, 대입 추천서 제외 등 불이익을 주기로 모집 요강에 명시했다.
경기도교육청이 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 김경근 의원에게 제출한 경기과학고 졸업생들의 의학 계열 대학진학률은 2018학년도 6.7%, 2019학년도 8.7%, 2020학년도 10.3%로 매년 늘고 있다. 장학금 회수 조치에도 2020학년도 졸업생의 의학계열 대학 진학 숫자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경기과학고는 2018학년도에 입학해 지난 2월 졸업한 학생 126명 중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의학계열 대학에 입학원서를 낸 것으로 확인된 23명의 장학금을 모두 회수했다.
의대에 원서를 낸 23명 중 13명은 합격하고 10명은 불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과학고 재학생들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은 연구활동, 국제교류협력활동, 진로체험활동 지원비로 1인당 3년간 약 550원이다. 경기과학고 3학년 학생 126명 중 21명도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상황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과학고와 광주과학고도 경기과학고와 마찬가지로 의학계열 대학 진학 졸업생들의 장학금을 회수하고 있다.
2022학년도 신입생 모집부터는 이 같은 조치가 전국 8개 모든 영재학교에 공통 적용된다. 지난 4월 전국 8개 영재학교 교장협의회는 의약계열 진학 제재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해 2022학년도 입학전형 모집요강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장학금 회수 조치가 졸업생들의 의학계열 진학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학계열 진학시 졸업을 취소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한국과학영재학교의 경우 2013학년도부터 의학계열 진학시 졸업을 취소하는 조치를 취한 후 한 명의 진학생도 나오지 않고 있다.
앞서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는 경기과학고를 졸업한 서울대 의대생이 출연했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방송 후 온라인 공간에서는 과학고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세금 먹튀’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제작진은 “제작진의 무지함으로 시청자분들게 큰 실망을 드렸다”며 사과했다.
해당 방송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나 국회에서도 영재학교에서 의대 지원 못 하게 하겠다는 기사를 여러 번 본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해당 글에서 “일반고와 영재학교는 학교생활기록부 질 자체부터 차이가 난다”며 “영재학교는 학교 자체에 세금으로 운용되는 좋은 프로그램이 많고 교과목 자체도 고급과정 이수라 생기부의 질 자체가 일반고 학생과 비교할 수 없게 높다”고 지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