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다발성 경화증 걸렸지만…

입력 2021-11-14 06:00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c)Jonas Becker

2019년 2월 독일의 스타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33)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발성 경화증을 진단받았다고 발표했다. 다발성 경화증은 뇌, 척수 그리고 시신경을 포함한 중추신경의 여러 부위에서 신경세포가 손상돼 발생하는 질환으로 어지러움, 마비 및 감각 이상, 시력장애 등 다양한 증상들을 수반한다. 영국이 낳은 천재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1945~1987)를 죽음으로 몰고 간 바로 그 병이다. 26살에 다발성 경화증을 진단받고 2년 뒤 무대에서 은퇴한 뒤프레는 점점 상태가 악화돼 42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오트는 당시 인스타그램에 “작년에 의료진에게서 처음 들었을 때는 세상이 소멸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황 상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지냈습니다. 다발성 경화증을 완치하는 치료법은 아직 없지만, 의학의 발전 덕분에 환자 대부분이 충분한 수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예상하지 못한 인생을 살게 되고, 나는 그런 길에 막 들어섰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끝에서 만나는 결과는 달라진다고 굳게 믿습니다”라고 적었다.

독일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트는 4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이듬해 뮌헨에서 2000여 명의 관객을 상대로 첫 연주회를 열며 신동의 탄생을 알렸다. 그리고 15세에 이탈리아 실비오 벤갈리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여러 콩쿠르에서 수상했다. 2007년 독일의 저명한 음악 전문지 ‘포노포룸’이 선정하는 클래식계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선정되는 등 그동안 독주, 실내악,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세계 무대를 바쁘게 돌았다. 특히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맨발 연주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힌다. 2010년 런던 심포니와 협연부터 맨발로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맨발로 페달을 밟는 것은 피아노와 더 가까워지는 나만의 방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당장 연주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예전보다 연주 횟수를 줄이고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하지만 아직은 병이 연주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프레 때와 달리 의학의 발전으로 질병의 악화를 많이 늦출 수 있다. 덕분에 그는 지난 6월엔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새 음반 ‘Echos of Life(삶의 메아리)’를 발표했다. 이 음반은 쇼팽의 ‘스물네 개의 전주곡 Op.28’과 함께 중간중간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곡들을 넣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애정과 함께 연주자로서 꾸준히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담겼다.

그가 오는 1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노장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의 정기 공연에 협연자로 선다. 한국 무대는 2006년, 2014년에 이어 세 번째지만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단계적 일상회복과 함께 스타 피아니스트들의 내한이 이어지고 있다.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 예프게니 키신, 브루스 리우(왼쪽부터). ⓒWarner classics, Johann Sebastian Hänel, 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과 함께 클래식계에서 내한 공연이 속속 확정되는 가운데 연말까지 오트를 비롯해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의 콘서트도 잇따라 열린다. 21일에는 폴란드 출신으로 지난해 클래식계 최고 권위를 가진 ‘그라모폰상 2021’ 피아노부문 수상자인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52) 리사이틀이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안데르제프스키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를 4년마다 선정하는 ‘길모어 아티스트상’을 2002년 수상하는 등 세계 피아노계를 호령하는 연주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4년 만의 내한인 이번 공연에선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의 24곡 중 12곡을 발췌하고 재구성해 그라모폰상을 수상한 음반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들려준다.

러시아 출신의 ‘영원한 피아노 신동’ 예프게니 키신(50)도 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불과 2살 때 음악에 대한 천재성을 보인 키신은 6살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원의 영재 특수학교에 입학해 안나 파블로브나 칸토르를 사사했다. 키신은 대부분의 연주자가 콩쿠르 우승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는 것과 달리 어릴 때부터 독보적인 연주로만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2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키신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부터 자신의 특기인 쇼팽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올해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캐나다 출신 브루스 리우(24)는 우승에 따른 세계 순회연주의 일환으로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윌슨 응 지휘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쇼팽 콩쿠르 결선 연주곡인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리우는 아시아 최초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던 베트남 출신의 당 타이 손의 제자다.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테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등 전설적인 거장들과 함께 러시아 피아니즘을 대표하는 엘리소 비르살라제(79)도 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알렉세이 볼로딘 등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낸 비르살라제는 2017년 첫 내한 당시 완벽한 테크닉으로 한국 관객을 감동시켰다. 12월 2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무대에서는 쇼팽 발라드 2번 3번, 모차르트 소나타 14번 등을 들려준다.

같은 날인 12월 2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2013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이스라엘의 보리스 길트부르크(37)가 지중배 지휘 서울시향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이어 12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200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 없는 2위를 차지한 러시아의 미로슬라브 쿨티셰프(36)의 리사이틀이 열린다. 쿨티셰프는 이번 무대에서 베토벤 소나타 31번과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7번 ‘전쟁 소나타’ 등을 연주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