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성에게 몰래 다가가 소변을 본 행위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강제추행으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김모(33)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김씨는 2019년 11월 오후 10시 46분쯤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 통화하던 여고생 A씨(당시 18세)의 뒤에 몰래 다가가 A씨의 머리카락과 옷 위에 소변을 본 혐의로 기소됐다. 연극배우인 김씨는 경찰에서 “공연을 같이하는 동료와 말다툼을 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 소변을 볼 곳을 찾아다니다가 홧김에 A씨의 등 뒤 쪽에서 소변을 봤다”고 진술했다. A씨는 “놀이터 의자에 앉아 통화하느라 김씨가 소변을 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가 집에 도착해 머리카락과 옷에 소변이 묻어 있는 것을 보고 짜증이 나고 더러워서 혐오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1심은 김씨의 행동이 강제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제추행죄는 개인의 성적 자유라는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죄”라며 “A씨가 자신의 머리카락과 옷에 묻은 김씨의 소변을 발견하고 더러워 혐오감을 느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뿐, 김씨의 방뇨로 인해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고 달리 증거가 없다”고 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김씨의 행위가 A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김씨는 처음 보는 여성인 A씨의 뒤로 몰래 접근해 성기를 드러내고 A씨를 향한 자세에서 A씨의 등 쪽에 소변을 봤다”며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A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추행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또 “김씨의 행위가 객관적으로 추행 행위에 해당한다면 그로써 행위의 대상이 된 A씨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침해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행위 당시에 A씨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 추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