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성지 ‘영등포산업선교회관(영등포산선 회관)’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노동 선교의 미래를 그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1979년 건립된 영등포산선 회관은 지난 2월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해 10개월 동안 새 단장을 마쳤다. 영등포산선은 이번 공사로 역사관과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도 마련했다.
영등포산선은 11일 서울 영등포의 회관 예배실에서 개관 축하 예식을 갖고 새 출발을 알렸다. 예배에서 ‘향기로운 소제물’을 주제로 설교한 손달익 서울교회 목사는 “번제물이 자신의 본체를 희생해 향기로운 제물이 됐듯 영등포산선의 새 회관도 이 공간을 통해 노동자와 상처받은 이웃에게 새 희망을 선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예배 후 이어진 축하마당은 손은정 영등포산선 총무와 임승규 영등포구청 일자리경제과 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노동과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주제로 한 동영상이 시작되자 장내는 숙연해졌다. 영등포산선이 걸어왔던 지난 역사를 담은 흑백사진이 이어지다 중간중간 ‘공순이’들의 증언이 나왔다. 공순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영상에 출연한 한 여성은 “영등포산선은 낮이고 밤이고 일만 하던 어린 우리에게 ‘공순이 덕분에 길에 차도 다니는 것이다. 너희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주며 격려해 줬다”고 전했다.
관계자들의 회고도 이어졌다.
영등포산선 2대 총무를 지낸 인명진 목사는 “노동 선교와 인권, 여성운동과 민주화의 상징인 영등포산선 회관이 단장하고 새 출발 하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 예장통합 영등포노회와 영등포구청 서울시가 모두 도왔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을 기점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이 회관이 역사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실무자들이 새로운 각오로 일하라”고 당부했다.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도 “노동하는 인간과 함께 걸어온 영등포산선의 여정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도록 헌신했던 많은 분들의 순명에 감사드린다”면서 “차별없고 평등하게 보호되고 증진돼야 하는 노동의 가치를 지켜 앞으로도 한국 사회의 유의미한 유산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1958년 공장이 밀집했던 영등포에 터를 잡은 영등포산선은 노동자 인권이 전무하던 시절 노동자들에게 생명을 선물했던 공간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55년 미국장로교가 로버트 C 어커트 선교사를 파송하면 산업선교를 시작했다. 이후 헨리 존스 선교사의 권유로 57년 ‘예장 산업전도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이듬해 영등포에 ‘영등포산업전도회’를 창립했다.
초창기 전도회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실태를 고발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노동자들의 권익 증진을 위한 노동조합·신용조합·소그룹 활동 지원, 교육 훈련 등을 통해 산업선교를 진행했다. 95년 민주노총이 설립될 때까지 노동자들의 비빌 언덕이었던 영등포산선은 97년 IMF 사태 이후 노숙자를 위한 햇살보금자리 운영과 상담 등을 통해 새로운 사역에 나섰다. 2010년 설립한 ‘품’을 통해 노동자의 갈등과 심리 상담을 하고 있다. 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