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산물이다. 1873년 태평양을 낀 캘리포니아주의 금광을 캐겠다며 몰려들던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포목상 리바이 스트로스와 제단사 제이콥 데이비스, 두 유태인이 만든 것이다. 굵고 거친 실로 짜 잘 헤지지 않는 텐트용 천을 역시 굵은 실로 박음질해 만든 바지, 쉽게 찢어지지 않도록 알루미늄 리벳을 박은 주머니….
청바지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노동자들의 옷’이었다. 색소가 빠져도, 밑단이 다 낡아도 최소 10년은 입는 바지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청바지는 1980년대 한 벌에 100달러가 훌쩍 넘어가는 프리미엄진의 등장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21세기 청바지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시대 변천사를 통해본 청바지의 미래를 전망하는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2021년 현재 청바지의 트렌드는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개인화’돼 있다는 게 NYT의 진단이다.
어떤 이는 속옷이 보일 만큼 허리 아래에 걸치는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어떤 이는 피부와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으며, 발목이 다 보이게 잘려진 밑단에 찰리 채플린 바지처럼 위는 넓고 무릎 아래는 좁은 바지를 입는 이도 거리를 활보한다.
면이 아닌 실크로 만든 청바지, 온갖 꽃무늬 수를 더덕더덕 붙인 청바지, 모직 양복바지처럼 얇은 천이라 조금만 크게 움직여도 찢어질 것 같은 청바지…. 이처럼 다양한 패션과 기호가 청바지로 유입되면서, 노동자의 옷이라는 청바지의 전통은 이제 사라질 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각종 산업의 공장에서 청바지를 입고 일하는 근로자는 찾아볼 수 없는 게 현대의 풍경이다. 청바지를 만들 때 쓰는 무명 천보다 훨씬 튼튼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폴리에스테르 섬유의 바지가 작업복으로 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청바지의 ‘패션화’는 1950·60년대 미국 청년세대들의 하위문화(Sub-culture) 운동이 일어나면서 시작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흑인 하류층의 음악으로 여겨지던 블루스와 재즈를 백인 음악에 도입하고 이를 통해 기성세대에 저항하던 문화가 그것이다. 남부 농업지대와 공장에서 흑인들이 입던 청바지도 히피세대에겐 필수 아이템이었다. 청바지가 저항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시절이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 이어지던 냉전시절 구소련과 동구권에서 청바지는 금기였다.
한 벌에 몇 만원 하지 않던 청바지가 럭셔리패션으로 변신한 건 유명 디자이너들이 이를 가져다 값비싼 명품으로 둔갑시키면서다. 아무렇게나 입던 청바지는 수백만원 하는 자켓에 받쳐 입는 바지로 변했다. 매년 새로운 형태의 청바지 사조가 유행했고, 일부러 찢어 입는 청바지까지 더 비싸게 팔렸다.
신문은 거의 5년 단위로 트렌드가 바뀌던 청바지가 이제는 아예 아무 유행없이 개인 취향에 따라 바꿔 입는 시대로 변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청바지의 개인화는 2020년대 서구사회의 개인주의 팽배와 일맥 상통한다”며 “비록 고유의 실용성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청바지는 세상의 흐름을 반영하는 거울같은 존재로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