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31년 만에 물가 상승률 최고치를 찍은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경제성장이 아닌 경제불황과 동조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고, 고유가 상황에서도 산유국들은 석유 채굴에 필요한 인력 수급마저 힘들어 발을 동동 구르는 형편이다. 유럽과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선 에너지 대란이 가시화되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6.2%를 기록해 3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발표한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다.
1년 동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나타내는 CPI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올라간 것은 석유 가격의 전 세계적 상승과 각종 지하자원의 연쇄적 공급부족에 따른 것이라고 언론들은 분석했다. 고유가→원자재 부족→공급망 붕괴에 따른 에너지 대란의 도미노가 식료품과 생필품, 자동차, 외식비 뿐 아니라 주택가격과 임대료 등 부동산 시장까지 강타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WSJ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세계경제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배후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주요 선진국의 정책 트랜드가 된 친환경(Green)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유럽, 한·중·일 등 주요 국가의 경제가 글로벌 공급망으로 연결된 상황에서 선진국의 급진적인 친환경정책이 석유와 원자재, 지하자원의 공급 영향을 과소평가해 벌어진 공급과 수요의 장기적 불균형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FT는 이 같은 인플레의 세계적 장기화를 ‘그린플레이션’이란 신조어로 설명했다. 선진국들의 친환경 정책과 ‘탄소제로 경제’ 드라이브로 청정 에너지 생산에 필요한 지하자원(리튬 망간 등)의 고갈 사태가 벌어졌으며, 각종 산업이 한꺼번에 탄소제로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되레 에너지원인 전기가 부족한 상황이 초래됐다. 전기가 부족해지자 이들 국가는 갑자기 더 많은 석유와 석탄, 철, 알루미늄, 구리를 필요하게 됐고, 연쇄적으로 이들 기초 지하자원 가격이 급등하자 소비자 물가까지 상승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그린플레이션이 경기 불황과 동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제조업과 중화학 공업은 각종 친환경 정책 규제와 원료 부족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없고, 전기 등 청정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전기자동차 등의 신산업은 아직 경제 전체를 이끌만한 기술 혁신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FT는 일부 경제 전문가들이 “친환경 전기차를 굴리기 위해 더 많은 화석연료를 태워 전력을 생산해야 하는 ‘그린 패러독스’가 벌어질 것”이라는 극단적 예상까지 내놓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WSJ는 “당장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면서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금리가 오르면 각종 기업에 타격을 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전했다. NYT도 “임대료처럼 (가격 변화가) 느리게 움직이는 시장으로까지 인플레가 옮겨가는 현실은 연준의 우려를 키우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이 미국인 재정 형평성을 해친다. (인플레) 추세를 뒤집는 것이 내 최우선 과제”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