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1년 만에 최대폭 상승을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비상에 걸렸다. 상승세는 예상됐지만, 그 폭이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어 인플레이션이 거세지고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 때문이다.
공급망 병목 현상, 에너지 위기, 임금 인상, 생산자 물가 상승 등 인플레이션 압박 요인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임대료 상승 등 다른 영역으로까지 번지고 있어 금리 인상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인플레이션이 미국인 재정 형평을 해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전방위 대응을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추세를 뒤집는 것이 나에게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확대가 지속되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가상승의 주요 요인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에 물가하락을 위한 방안 마련을 지시했고,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엔 시장 조작이나 바가지요금에 대한 단속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의회가 사회복지 예산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노동부가 발표한 10월 CPI는 전년 동월보다 6.2%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전문가들을 상대로 집계한 전망치 5.9%보다도 높다. 1990년 12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전년 동원 대비 5% 이상 급등을 기록한 건 지난 5월 이후 6개월째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4.6%, 전월보다 0.6% 각각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나선 탓이 크다고 봤다. 공급망 병목 현상으로 빚어진 물류비 및 원자재 값 상승,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인건비 인상 등의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한 요인이 컸다는 것이다. 실제 전날 나온 미국의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6% 올랐다.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전국자영업연맹에 따르면 10월 소상공인 53%가 가격을 인상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견인한 임대료 상승까지 겹쳤다. 임대료는 CPI 지수에 포함된다. 뉴욕타임스(NYT)는 “10월 CPI는 원자재 가격 인상, 공급망 압박, 임대료 상승 등으로 급등했다”며 “가격 상승 둔화를 강조해 온 바이든 행정부와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에 좋지 않은 소식”이라고 전했다.
가격 상승이 전방위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정부의 고민이다. 반도체 공급망 압박을 받고 있는 중고차와 신차 가격은 여전히 높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휘발유, 난방가스, 식료품, 가구 등 시민 일상과 밀접한 주요 품목 가격이 모두 오르고 있다.
특히 임대료 상승은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한 우려도 높인다. 임대료는 연(年) 단위 계약 특성상 서서히 변화하는 특징이 있어 추세가 단기간 뒤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NYT는 “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있고, 임대료처럼 (가격 변화가) 느리게 움직이는 범주로까지 옮겨가는 현실은 연준 우려를 키우는 원인”이라며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금리를 더 빨리 인상하는 등 재정 지원 철회 계획을 서두르라는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격 상승 추세가 계속되면 소비자 심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가격 상승을 예상한 소비자들은 이에 대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임금과 가격 상승을 더 끌어올려 물가상승 사이클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