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편의를 목적으로 도입된 오픈뱅킹을 두고 시중은행과 빅테크 기업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은행권은 기성 금융권이 구축해놓은 고객 데이터베이스(DB)를 토대로 빅테크가 ‘무임승차’를 한다고 호소한다. 반면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는 오픈뱅킹이 금융 소비자의 비용과 부담을 덜어줄 ‘혁신 기술’이라고 맞서고 있다.
9일 조달청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에 따르면 금융결제원은 지난 5일 ‘디지털금융 환경 변화 관련 연구용역’을 입찰에 부쳤다.
주요 내용은 오픈뱅킹·마이데이터 관련 금융회사 및 사업자의 동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타 선도국가의 경우 오픈뱅킹 등 디지털금융 수수료를 얼마나, 어떻게 부과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제반 비용을 산정해 표준비용을 도출해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중은행,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 중 대표기관을 선정해 관련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겠다고 밝혔다.
금결원이 이번 연구용역으로 얻고자 하는 자료는 은행이 오픈뱅킹 과정에서 핀테크 업체에 계좌·출금·이체 등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들어가는 ‘정보 비용’이다.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핀테크 서비스에서 오픈뱅킹을 통해 시중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가려면 해당 고객의 은행 계좌 정보 등이 필요한데, 이 데이터를 보관·처리·전송하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금결원의 이 같은 연구용역 배경에는 금융서비스를 둘러싼 기성 은행권과 핀테크 기업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두 업계는 편의성을 앞세운 신생 금융서비스를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지난 8월 정부가 대환대출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은행권 내에서는 “(대출)상품도 은행이 만들고 사후 책임도 은행이 지는데 핀테크 업체는 플랫폼만 제공하고 이익을 가져간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대환대출 플랫폼은 모든 금융사의 대출상품을 한곳(플랫폼)에 모아 소비자가 손쉽게 금리를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로, 금융소비자 편익을 이유로 설치가 추진된 사업이다. 금융위는 당초 10월 중으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빅테크 종속과 은행권 내 과다경쟁을 우려한 은행권 반발에 대환대출 플랫폼 논의는 사실상 백지화된 상황이다.
오픈뱅킹을 둘러싼 은행과 빅테크의 신경전도 맥락이 비슷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1일 “금융권에서의 경쟁은 결국 정보싸움인데, 오픈뱅킹은 이 (고객)정보를 넘겨주는 시스템”이라며 “통상 거래에서는 기브앤테이크가 있어야 하는데 은행·핀테크 오픈뱅킹 거래에서는 기브만 있고 테이크가 없는 상황”이라 말했다. 빅테크가 오픈뱅킹을 통해 은행이 구축해온 고객과 정보를 헐값에 넘겨받고 있는데, 은행은 되레 비용을 들여 이것을 도와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공식적인 정부 조사로 정보처리 비용이 밝혀지면 이걸 토대로 그나마 핀테크 업체에 알맞은 정보 비용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핀테크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소비자 편의를 위해 혁신 기술을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편익이라는 오픈뱅킹의 취지에 맞춰 적법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일부 기성 금융권의 주장처럼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부당하거나 ‘무임승차’라면 소비자들이 점차 시장에서 외면하지 않겠나”고 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오픈뱅킹을 이용하면 기존에 400~500원에 달하던 입·출금 비용을 1/10 수준인 20~50원으로 낮출 수 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