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저지에 추모탑 못 간 윤석열 “저는 쇼 안 한다”

입력 2021-11-10 18:10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전두환 정권 옹호 발언 등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10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윤 후보의 방문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지로 윤 후보는 분향소도 가지 못하고 묘역 근처에 서서 묵념으로만 참배했다.

지난해 8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무릎 사과’가 재연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윤 후보는 무릎을 꿇는 대신 90도로 몸을 두 번 숙였다.

윤 후보가 호남을 찾은 것은 지난 7월 대선 출마 선언 후 약 석 달 만이다. 이날 가장 먼저 전남 화순에 있는 민주화 1세대 홍남순 인권변호사 생가를 방문했고, 이어 광주 서구에 있는 5·18 자유공원을 둘러봤다.

이번 호남 일정의 핵심은 5·18민주묘지 참배였다. 윤 후보가 어떤 말을 내놓을지, 어떤 방식의 사과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윤 후보가 도착하기 전부터 묘역에는 지역시민단체 회원들과 대학생들이 저지선을 만들어 긴장감이 맴돌았다.

오후 4시20분쯤 정문인 민주의문에 도착한 윤 후보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굳은 표정으로 방명록에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고 한 자 한 자 써내려 갔다. 정문에서 추모탑까지 200m 거리였지만 취재진과 시민들, 경호 인력들이 한데 엉켜 20여분이 지나도 추모탑에 도착하지 못했다.


추모탑으로 향하는 윤 후보의 등 뒤로 “5·18의 영령들이 울고 있다” “광주학살 옹호하는 윤석열은 돌아가라” “또 쇼하러 왔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다만 윤 후보 측이 우려했던 것처럼 계란이나 썩은 사과가 날아오지는 않았다.

앞서 윤 후보가 광주에서 공격당하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보수 지지층 결집 효과를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왔었다. 이를 감안한 듯 피켓 중에는 ‘욕하지 맙시다, 계란 던지지 맙시다, 자작극에 말려들지 맙시다’라는 구호가 있었다. 윤 후보를 향한 물리적인 공격도 없었다.

저지선에 막힌 윤 후보는 결국 분향소 앞까지 가지 못했다. 추모탑으로 가는 중간에 서서 5분여를 기다리다 결국 사과문을 읽었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꺼낸 뒤 “40여년 전 5월 광주 시민들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피와 눈물로 희생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마친 뒤 정문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는 헌법의 5·18정신 계승을 강조했다. 또 ‘광주 방문을 두고 정치적 자작극’이라는 비판이 있다는 질문에 “저는 쇼 안 한다”고 답하며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만큼의 적극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윤 후보의 사과가 등 돌린 호남 표심을 얼마나 되찾아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 후보는 11일에는 전남 목포에 있는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한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다.

이가현 기자, 광주=강보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