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 기합 위한다면 내게 욕도 좋다” 김형실 감독

입력 2021-11-10 17:19 수정 2021-11-10 17:26
한국배구연맹 제공

여자 프로배구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의 창단 첫 승을 이끈 김형실 감독은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다. 너무 빨리 와서”라고 손사래 쳤다. 여자배구계에 반평생을 바친 백전노장은 첫 승의 기쁨 대신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아직 선수들이 어리다보니 기합과 오기가 약하다”며 “오기발동을 위해서라면 나한테 욕이라도 하라 했다. 그렇게라도 소리 지르며 선수들이 기합을 넣는다면 뭐든 좋다”고 말했다.

페퍼저축은행은 9일 경기도 화성종합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1-2022 V리그 IBK기업은행과의 1라운드 최종전에서 3대 1(25-21 25-21 22-25 25-23)로 승리했다. 이번 시즌 새로 창단한 막내팀의 역사상 ‘첫 승’이었다. 지난 경기에서 1위 현대건설을 상대로 리그에선 유일하게 첫 승점을 따낸 페퍼저축은행은 이날 IBK기업은행에게 첫 승까지 따내며 여자배구판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김 감독은 10일 국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한 세트, 두 세트를 따더니 세 세트를 다 따버렸다”며 선수들을 칭찬하면서도 “앞으로가 걱정이다. 천천히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려던 게 너무 빨리 (1승에) 와버렸다. 마냥 기뻐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리그 개막 이전 시즌 목표를 5승으로 잡았다. 총 6라운드 36경기 중 5승이었다. 팀은 5개월 만에 급히 창단됐고, 리그 개막 5일 전에야 선수 전원이 모였다. 그만큼 연습시간이 부족했고, 기존 6개팀에서 보호선수 9명을 제외하고 선수를 데려와야 해 전력도 상대적 열세였다. 매 경기가 시합이자 훈련인 페퍼저축은행이었기에 1라운드에 첫 승을 하는 것조차 김 감독에게는 ‘너무 빠른’ 승리였던 셈이다.

배구계가 페퍼저축은행의 첫승에 술렁일 때 김 감독은 다시 초심을 강조했다. 그는 “첫 승이 빨리 온 만큼 다른 팀들의 견제도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예전에는 신생팀, 젊은팀이 실수해도 어느 정도 이해해주던 시선들도 이제는 좀 더 엄격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초심과 겸손을 강조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3가지를 주문했다. 겸손, 초심, 냉철한 자기성찰이다. 그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며 “선수들과 우리 팀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부족한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기합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욕을 해도 좋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국가대표 선수가 3명이나 포진한 IBK기업은행의 노련미에 대항하려면 선수들이 마인드컨트롤 하는 게 중요했다”며 “실수하면 ‘미안’ ‘미스’ 소리 하지 말고 ‘다시’ ‘다음’이라고 소리 질러라, 저한테 욕이라도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불안함을 날리고 정신을 집중하라는 요구였다.

페퍼저축은행은 오는 12일 1위 현대건설과 2라운드 첫 경기를 갖는다. 그는 “다시 냉철하게 초심으로 돌아가서 패기 있는 플레이, 의식있는 플레이를 승부 근성을 갖고 대비를 해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희진의 빠른 회복을 바랐다. 김희진은 전날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에서 네트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처리하려다 넘어지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 한동안 코트에 쓰러져 있다가 들것에 실려 나가 병원으로 향했다. 김 감독은 “제일 중요한 건 김희진 선수 빨리 회복하는 것”이라며 “기사들을 보니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