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고 문제 해결’ 함장이 소극 대처”…일병 극단 선택 부적절 조치

입력 2021-11-09 18:25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임태훈 소장이 해군 정 일병 사망사건 관련 강감찬함 지휘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군 3함대 강감찬함 소속 정모 일병이 구타와 따돌림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함정 지휘부가 이를 알고도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함정 지휘부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군인권센터는 9일 정 일병이 지난 3월 16일 함장인 A대령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카카오톡 메시지를 공개했다. 정 일병은 이날 업무 미숙을 이유로 선임병인 C상병으로부터 폭행과 폭언을 당했다. 메시지에서 정 일병은 “일을 서툴게 하던 저를 밀치며 말했습니다. ‘씨X, 너 뭐하는데? 그럴 거면 가라. 꺼져라!’ 그러나 저는 후임병으로서 ‘제가 맡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를 다시 밀치며 ‘꺼지라고 씨X’이라고 했습니다”라는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담아 메시지를 전송했다.

정 일병은 자책감에 자해도 했고, 집단 따돌림에 의한 자살 충동까지 든다고도 호소했다. 또 C상병의 전출 조치를 희망한다는 요청도 전했다. 이에 A대령은 곧바로 “필요하다면 네가 원하는 대로 C상병 전출 조치를 포함해서 (조치하겠다)”면서 “함장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군인권센터는 A대령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는 “A대령은 바로 답장을 보내긴 했으나 즉각적인 조치는 없었다”며 “다음날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조치로 피해자 보직을 변경하고, 함 내에서 다른 격실(내무실)로 자리를 옮겨준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출구가 정해져 있는 함정 내 동선은 비슷하기 때문에 내무실 분리 조치를 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가해자들과 함정 내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고 덧붙였다.

괴롭힘을 벗어나지 못한 정 일병은 지난 3월 27일 A대령에게 다시 전화해서 죽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 함장과 부함장은 정 일병의 전화를 받고는 정 일병을 가해자들과 대면하도록 했다. 군인권센터는 “가해자들은 이 자리에서도 정 일병에게 ‘일을 못 하고, 일하려는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발언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정 일병은 3월 28일에도 구토와 공황발작, 과호흡 등의 증상이 더욱 심해진다며 정신과 치료와 하선 후 육상 전출을 희망한다고 A대령에게 전했다. 그러나 이틀 뒤 정 일병이 병영생활 상담관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에 따르면 A대령은 도리어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 “그럼 이제 널 도와줄 수 없다”며 견디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인권센터는 “부함장인 B중령은 지난 4월 초 공황발작 증상을 보인 정 일병에게 ‘잘 해보기로 해놓고 왜 또 그러냐’며 책망하듯이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군인권센터는 함장 A대령과 부장 B중령이 정 일병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살고자 하선을 희망하던 피해자를 복무 기피쯤으로 취급해 불안 증세를 극대화하는 부적절한 조치를 이어갔다”며 “인권위는 면밀한 조사를 통해 강감찬함 함장, 부장에게 엄중 징계를 권고하고, 선내 인권침해 사건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