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의 한 특성화고 식품가공과를 나온 김준영(가명·26)씨는 스무 살이 되던 2014년 상경했다. 고교 3학년이던 2013년 특성화고 학생과 중견기업을 연결해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기업 계열사 취업에 성공한 것이 계기가 됐다.
주변 친구들은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간 김씨를 부러워했다. 한부모가정 출신으로 어린 동생까지 돌봐야 했던 그는 희망을 안고 서울 본사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은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았고 잔업에 고된 일까지 도맡아야했지만 미래가 있다고 믿었다.
회사는 “지금은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만, 군대에 다녀오면 경력을 인정해 월급도 200만원대 중반으로 올려주고 승진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계약서는 따로 쓰지 않았다. 김씨는 구두 약속을 믿고 입대 전까지 2년 동안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런데 전역 후 복귀한 회사에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간 회사 대표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박봉은 그대로였다. 서울에서 생활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결국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2018년 귀향을 택했다. 그는 9일 “무엇보다 또래 대졸 신입사원과의 처우가 너무 크게 난다는 현실에 박탈감이 커졌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공주로 돌아온 후에는 휴대전화 액정 제조 공장에서 3교대로 일했다. 일주일에도 몇 명씩 그만두는 사람이 나오는 험한 일터였다. 그때마다 부품을 갈아 끼우듯 빈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김씨는 그 무렵 고교 시절 요리사가 되겠다며 어렵게 땄던 한식 자격증이 떠올랐다고 한다. 결국 3개월 만에 공장을 나왔다.
이후 김씨는 대학가 주변 작은 일식집에 취직했다. 하루 근무 시간은 14시간에 달했지만 손에 쥐는 월급은 160만원이었다.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쳤고, 근로계약서도 없었다. 급여를 올려줄 수 있냐는 그의 요청에 사장은 “대학도 안 나온 네가 어디 가서 일을 배우고 할 수 있겠냐”며 무시했다. 1년 3개월 만에 다시 일을 그만뒀다.
김씨 친구들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특성화고 축산과를 나온 친구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유통과를 나온 친구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제빵사로, 식품과를 나온 친구는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중이다.
원예과를 나온 뒤 일자리를 못구해 전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동창도 마찬가지다. 그 친구는 현재 주유소에서 일한다. 모두 ‘특정 분야 인재와 전문 직업인을 양성한다’는 특성화고 취지와는 거리가 먼 삶이다. 김씨도 지난달부터 배달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