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층 계단 하루 5번씩”…한 팔로 올린 피트니스 우승

입력 2021-11-09 17:05 수정 2021-11-09 17:54
김나윤씨의 WBC 피트니스 대회 출전 모습. 김나윤씨 인스타그램

“사고가 난 후 병원 화장실 거울에서 한 팔이 없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때가 제일 절망적이었다.”

지난 9월 충북에서 열린 WBC(World Body Classic) 피트니스 대회에서 우승한 김나윤(29)씨는 사고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김씨는 지난 2018년 7월 15일 오토바이 사고로 왼팔을 잃었다. 재활 후 병원에서 퇴원하기까지만 1년이 걸렸다.

김씨는 사고 후 약 3년 만에 열린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해 비장애인과 경쟁했다. 비키니 쇼트, 미즈비키니 톨, 오버롤 부문에서 우승해 3관왕에 올랐다.

김씨는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챔피언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럽다”며 “저는 장애 3살이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새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고 전후로 약 12년을 헤어 디자이너로 일했다. 운동을 전문적으로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고로 한 팔을 잃어 척추 측만이 심해졌다. 김씨는 “재활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피트니스 선수 김나윤씨.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라이브 영상

김씨의 삶이 바뀐 3년 전 김씨는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춘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코너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친구는 옆에서 김씨에게 “팔이 없어졌다”며 울었다. 김씨는 “약간 아린 느낌만 있었다”며 “친구가 팔을 찾아오니 무서운 감정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앰뷸런스가 도착할 때까지 정신을 잃지 않았다. 7월의 아스팔트는 뜨거웠다. 김씨의 뒷머리에는 아직도 화상 흔적이 있다. 김씨는 “뒤에 운전자 분이 신고를 해주셨다. 당시 도로에 차가 많았는데 양보를 많이 해줬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춘천 지역 병원에서는 접합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서 응급헬기를 타고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병원으로 넘어왔다. 잘린 왼팔은 절단 부위가 매끄럽지 않아 접합 수술을 하지 못했다.

김씨는 왼팔 외에도 경추 등 19군데가 골절됐다. 뼈가 붙을 때까지 침대에 두 달 정도 누워만 있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곧 일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몸을 가눌만한 상황이 됐을 때 병원 화장실에서 왼팔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처음 접했다. 몸통의 한 부분이 없다는 게 그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김씨는 사고 후에도 긍정적인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친구, 가족, 직장 등 주변의 도움을 꼽았다. “사고 전 일했던 미용실 대표님이 감사하게도 점장직으로 다시 와달라고 했고, 가족도 그대로, 친구도 그대로 주변 상황이 바뀐 게 없었다.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일상생활이 수월해지진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는 게 크게 다가왔다.”

김씨는 재활 운동과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피트니스 대회 출전을 결심했다. 하루에 아파트 계단 23층을 5번씩 왕복하는 등 운동에 매진했다. 하루에 네 끼씩 각 탄수화물 100g, 단백질 100g만 먹었다. 김씨는 “아침에 두 끼는 고구마랑 닭 가슴살, 두 끼는 단호박과 닭 가슴살을 먹었다. 운동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식단이라도 칼처럼 지켜야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직 절단 환자에게 발생하는 환상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피트니스 대회 우승을 넘어서 재활운동 전문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씨는 “모든 사람들은 제각각 갖고 있는 아픔들이 있다. 장애인은 그냥 겉모습으로 드러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