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재개발·재건축 신속통합(신통)기획에 공룡 재건축 단지가 몰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입지 요건 등이 불리해 정부 협조가 필요한 재개발과 달리 강남 여의도 ‘금싸라기’ 재건축이 공공 기획 사업에 지원한 건 의외라는 평가다. 특히 강남 등 주요 지역에서의 대단지 신청이 거의 없었던 국토교통부 중심의 공공재건축 사업과 비교하면 두드러진 성과다.
9일 서울시와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와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대단지 아파트 중에선 최초로 신통 기획 대상지로 낙점됐다. 신통기획의 전신인 공공기획 때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등 중소형 규모 아파트 단지 신청은 있었지만, 서울 금싸라기 땅이나 대단지 중에선 최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는 12일 추가 접수된 아파트를 대상으로 어떤 식으로 추진할지 실무회의를 연다”며 “미도아파트와 시범아파트는 이미 신통기획에 선정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미도아파트는 1983년 준공돼 지어진 지 39년이 됐다. 총면적 19만5080㎡에 2436가구가 거주하는 대단지로 대치동 3대장인 '우선미(우성, 선경, 미도)' 중 하나다. 2017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정비구역 지정 신청서를 냈지만 모두 반려됐다.
24개동 1584가구 규모의 시범아파트는 오 시장이 지난 4월 취임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시범 아파트를 꼭 한 번 직접 방문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을 정도로 오래된 아파트다. 1971년 준공 이후 50년이 넘었다. 2017년 안전진단도 통과했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년 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이유로 여의도 개발 계획을 보류하면서 사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공기단축에 승부수 건 공룡 재건축
신통기획은 재개발·재건축 시 정비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서울시가 참여하는 대신 각종 심의 기간을 줄여주는 사업이다. 현재 도시계획위원회 대신 특별분과(수권)위원회 신속 심의 등을 활용해 통상 5년 넘게 걸리는 정비구역지정 절차를 2년 안팎으로 단축해준다. 또 사업시행단계에서도 각각 이뤄졌던 교통심의, 환경심의, 건축심의가 통합돼 심의 기간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게 골자다.
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정비구역지정 절차를 따르려면 각 구와 담당 실무과 등을 돌아다니면서 해결해야 하는데, 이를 서울시가 맡아서 한 번에 통과시켜주겠다는 것”이라면서 “대신 시는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공공성을 담보하려 한다”고 말했다.
신통기획에 신청한 아파트 단지는 이런 ‘공사기간(공기)’ 단축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등 각종 불이익을 상쇄할 정도로 큰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했다. 미도아파트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예상되는 사업비만 조 단위다. 공기 단축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이런 이자를 줄일 수 있다”며 “이것만 감안해도 재초환, 분담금 등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시범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재초환 등 우려가 있다고 정부 정책이 바뀌기만 기다릴 순 없다”며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법은 추후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리스크 헤지’ 방법 중에는 차기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정권교체든 재창출이든 서울의 공급난을 고려하면 ‘못 박힌’ 재건축은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재초환 같은 규제 역시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라 보고 공기 단축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서울시 향한 의심의 눈초리
미도·시범아파트처럼 장밋빛 기대를 가졌다가 와장창 깨진 경우도 있다. 기존 신통기획 1호 대상으로 검토되던 송파구 오금동 현대아파트의 경우 사업이 엎어졌다. 서울시가 내민 정비계획에서 건폐율과 공공임대주택 비율 등이 예상과 다르자 주민 내 이견이 생긴 탓이다. 현대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신통기획이 민간 재건축 사업을 서울시가 보조해주는 개념이라지만 결국 주도권은 서울시가 가지고 있다”며 “미도·시범아파트 등도 나중에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서울시는 미도아파트에는 ‘35층 이상’과 ‘용적률 상향’ 등을, 시범아파트에는 ‘준주거지역 종상향’, ‘50층 이상 층수 완화’ 등의 인센티브를 제안해 놓은 상태다. 공공기여분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후속 절차에 돌입한 후 논의될 예정이어서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다.
이에 대해 시범아파트 입주민은 “저희도 (서울시 안은) 알 수가 없어서 막상 해봐야 판단할 수 있다”며 “주민들 설득이 안 되는 안이면 당연히 못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도아파트 관계자도 “막상 하려고 할 때 이상하면 우리도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며 “서울시가 1호 아파트라고 홍보했는데 우리가 비토하도록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서울시는 신통기획에 참여한다고 해서 법에서 정해진 것 이상의 과도한 공공기여를 요구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강남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오금 현대아파트 사례를 고려하면서 지켜봐야 한다”며 “미도 등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다른 단지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