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의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20일 만에 최고가 기록을 새로 썼다. 미국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측에서도 제기됐지만 금리 인상에 대해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자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으로 금 대신 비트코인을 선택하는 모양새다.
투자 정보 사이트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9일 12시 기준(한국시간) 6만8000달러(약 8160만원)를 넘어서면서 20일 만에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약 1조2742억달러(약 1502조원)으로 미국 테슬라(1조1513억달러)와 구글(1조314억달러)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앞서 비트코인이 지난달 20일 신고가를 경신했을 때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비트코인 가격 상승의 핵심 동력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비트코인의 연계 상장지수펀드(ETF) 정식 출범으로 자산 가치의 안정성을 인정 받은 호재가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 8월 이후 4개월 동안 5%의 상승세를 지속하자 비트코인은 지난 9월 4만3800달러(종가기준)에서 10월 6만1309달러로 약 40% 급 상승했다.
이는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헷지(리스크 회피) 수단으로 사용했던 금의 자리를 비트코인이 대체하는 모습이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최대 금 상장지수펀드(ETF)에서 1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유출됐다. 금값은 인플레이션 상승 기류에도 지난 5월 올해 최고가를 찍은 후 하락세를 보여 온스당 1800달러 근처에서 머물고 있다.
연준 측은 앞서 “인플레는 일시적”이라는 데 방점을 찍어왔지만, 지난달 22일 제롬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오래갈 것 같다.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달라진 목소리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는 지난 주말 주간 뉴스레터에서 “인플레이션 이야기가 여전히 뉴스 헤드라인을 지배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잡히지 못하면 비트코인의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히는 물류 대란으로 인한 병목 현상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물가 상승의 불안 요인이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자회사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팀 우이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물류대란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노동력뿐 아니라 컨테이너, 운송, 항만, 트럭, 철도, 항공, 창고 등 공급망의 모든 지점에서 병목현상이 나타나 당분간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8일(현지시간) 고공행진하고 있는 물가가 올 겨울에는 5%대 중반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플레이션 억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준의 금리 인상은 내년 중순 이후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마무리하는 내년 6월 이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리처드 클래리다 연준 부의장은 “대부분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을 위한 세 가지 필요조건이 2022년 말까지 충족될 것으로 생각한다. 금리 인상을 고려하려면 멀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업률이 계속 하락한다면 2022년 말 최대 고용에 도달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이 지난 2분기 경제 회복에서 ‘확대’ 국면으로 전환했다고 평가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