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아스콘, 반도체… 큰일이다, 일상이 멈추고 있다

입력 2021-11-07 16:54 수정 2021-11-07 16:56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아파트의 주민들은 지난 주말 때아닌 주차대란을 겪었다. 아파트단지 안의 도로 보수공사가 예정보다 늦어졌기 때문이다. 주차공간이 없어서 주차에 애를 먹는 가하면, 공사 때문에 주차해놓은 차도 쓸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관리사무소측은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 공급이 원할하지 않아서 일정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지하철 역사에서는 고장 난 에스컬레이터 수리에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부품 공급이 늦어져 수리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요소수는 이미 대란 수준으로 판을 키웠다. 물류 차질은 물론 건설·대중교통 마비까지 빚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요소수를 비롯한 부품·소재, 원자재 공급망에 경고음이 높다. 경제에 ‘피’가 돌지 않으면서 산업현장을 넘어 일상까지 멈춰세우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는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미·중 무역갈등, 코로나19 등을 배경으로 덩치를 불리고 있다. 수십년간 구축·가동된 ‘글로벌 분업 체계’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가격경쟁력이 없어서 국내 생산을 접고 수입에 의존해온 원자재, 부품·소재는 고스란히 허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

7일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이 한국무역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따르면 올해 1~9월 한국이 수입한 품목 1만2586개 중 3941개(31.3%)는 특정국가 의존도가 80% 이상이다. 특히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율이 80% 이상인 품목은 1850개나 된다. 미국(503개), 일본(438개)보다 쏠림현상이 심하다.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요소수 사태다. 요소수 제조 공정은 크게 어렵지 않다. 단지 채산성이 떨어져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관세청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수입한 산업용 요소 가운데 97.66%가 중국산이다. 중국이 요소 수출을 중단한 이면에는 호주와의 석탄전쟁이 자리한다.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제한하면서 석탄 가격은 크게 올랐고, 석탄에서 추출하는 요소도 덩달아 가격이 올랐다. 공급 물량도 줄었다. 중국은 자국 내 물량이 달리자 요소를 수출 제한품목으로 묶어버렸다. 이는 한국의 타격으로 이어졌다.

요소수 대란이 장기화하면 건설·물류 현장의 파열음은 불가피하다. 화물차의 경우 요소수를 필수로 하는 경유차가 대부분이라는 걸 감안하면 건설자재 운송, 수출입 물류에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내 물류망이 멈춰버리는 최악 상황도 거론된다. 산업계에선 “이달 중 대안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달부터 ‘올스톱’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건설장비도 요소수 사태를 비켜가지 못한다. 굴착기, 휠로더 등 건설장비 대부분은 디젤 엔진이라 요소수 공급이 필요하다. 건설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4t급 휠굴착기의 경우 4~5일마다 요소수 10ℓ 1통이 들어간다. 조은석 전국건설노동조합 정책국장은 “구할 수는 있지만,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이 크다”며 “이번 주부터는 요소수가 아예 동나거나 비싸 차라리 기계 운행을 쉬겠다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고 걱정했다.


여기에다 반도체 공급 부족은 전 세계 첨단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집어삼켰다. 애플은 올해 3분기에 시장 전망보다 낮은 실적을 기록했다. 시장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기는 2017년 3분기 이후 4년 만이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아이폰13 생산에 차질이 생긴 게 가장 큰 이유다. 애플은 아이패드 생산을 줄이는 대신 아이폰13 생산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물량 조절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하반기 출시 예정이던 갤럭시S21 FE 출시를 보류했다. 대신 폴더블폰 생산을 늘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당분간은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올해 3분기에 13년 만의 최저치를 찍었다. 한국 자동차산업협회(KAMA)는 국내 완성차 업계의 올해 3분기 생산량이 76만1975대로 전년 동기 대비 20.9% 감소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생산량이 크게 줄었던 2008년(76만121대) 이후 13년 만의 최저치다. 세계 주요 완성차업체라고 다르지 않다.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공급 부족이 2023년까지 계속 된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또한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전기차 배터리에서 ‘불안한 신호’가 감지된다.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광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탄산리튬 가격은 지난 4일 ㎏당 175.5위안(약 3만2500원)으로 1년 전(37.57위안)보다 4.67배가량 뛰었다. 배터리에 필요한 망간, 코발트, 알루미늄 등도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가격 인상은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배터리 업체들은 원자재 확보를 위해 분주하다.

여러 용도로 쓰는 범용 원자재의 공급망에도 그림자가 짙다. 중국은 최근 전력난, 탄소배출 규제 등을 이유로 마그네슘 생산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그네슘 가격은 올해 7월 t당 1만9000위안에서 9월 한때 7만 위안까지 치솟았다. 마그네슘은 자동차, 스마트폰, 배터리 등에 소재로 쓰인다. 특히 자동차 부품에 사용되는 알루미늄 합금 생산을 위한 필수 원료다.

건설 현장과 생활용품에 널리 쓰이는 실리콘도 불안하다. 중국 내 감산이 이뤄지면서 실리콘 원료인 메탈실리콘 가격은 8월 초 1만7000위안에서 지난달 6만1000위안까지 상승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내부적으로 범용 수입품목에 대한 전반적 공급망 점검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엽 정진영 기자 snoopy@kmib.co.kr

[글로벌 공급망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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