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유럽의 어떤 국가보다 외국인과 유색인종에게 관대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시리아 내전으로 엄청난 난민이 유럽으로 유입됐을 때 앞장서서 이들을 수용했고, 독일인의 평균적인 시민의식도 이민자들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독일이지만, 정치계는 여전히 ‘독일 순혈주의’가 위력을 떨치고 있다. 유력 정치인 뿐 아니라 의회에도 이민자 출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치러진 총선에서 독일 연방 의회(Bundestag) 최초의 흑인 여성 의원이 탄생했다. 녹색당 소속으로 헤센주 하나우시에서 당선된 아베트 테스파이에수스(47)가 그 주인공이다. 독일에선 최초 흑인 의원도 2013년에야 나왔다.
북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출신인 그는 1980년대 부모를 따라 독일로 이주했다. 내전에 따른 대량학살을 피해 난민으로 독일땅을 밟은 그녀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변호사로 일했다.
평생 변호사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그가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2년전 하나우에서 벌어진 한 사건 때문이었다. 극우 청년들이 도심의 한 카페에 난입해 이민자와 외국인만 골라 흉기를 휘둘러 9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자신의 일터 인근에서 벌어진 이 일을 직접 목격한 그는 공포에 휩싸여 겨우 출근했다. 그런데 함께 출근한 독일인들은 마치 다른 날과 똑같은 일상을 겪은 듯 평온하게 농담을 주고 받으며 일했다고 한다. 그는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때 처음으로 이 나라가 내가 살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다른 나라로 이민 가는 대신 정치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다문화를 주창하는 녹색당에 입당했고,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라는 슬로건으로 지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테스파이에수스는 “극우인 독일대안당(AfD)이 이미 연방 의회에 진출해 있지만 나는 이들이 출석한 의회의 의석 바로 옆자리에서 이들의 불법화를 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