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 앞둔 코인 시장, 돈 뺄까?… “‘고래’들은 계속 간다”

입력 2021-11-07 06:00 수정 2021-11-07 06:00

20대 개인 투자자 A씨는 암호화폐(가상자산) 과세를 앞두고 보유 자산을 어떻게 증빙할지 고민하고 있다. A씨는 500만원 가량의 종잣돈으로 암호화폐에 투자해 7억원까지 불렸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10여 곳의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고팔았는데 매매 횟수만 13만건이 넘는다. 암호화폐 투자로 생긴 소득을 투자자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그는 엑셀로 거래 내역을 정리하고 있다. A씨는 정당하게 거래하고도 증빙이 부족해 억울하게 세금을 더 내진 않을까 걱정이 크다.

암호화폐 과세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분주하게 대응책을 찾고 있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을 양도·대여해 얻은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세금을 매기고자 한다. 연간 매매 차익에서 250만원을 공제하고 남은 금액에 22% 세율(지방세 포함)이 적용된다. 여당은 과세 유예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했지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코인 과세’는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드는 정책이다. 그러나 차익을 어떻게 확인하고 세금을 거둘지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관련 커뮤니티에 문의 글을 올리거나 개별적으로 세무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에서 근무했던 권인욱 세무사, 대학원에서 블록체인을 전공하는 우동호 세무사 등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코인 투자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을 알아봤다.

과세 앞두고 코인 빼야 할까

암호화폐 투자자들의 최대 고민은 보유한 코인을 과세 전에 팔지 말지다. 세금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시장 경색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저렴하게 코인을 매입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 중인 투자자들은 차익에 비례한 세금폭탄을 맞을까 걱정이 크다. 연말에 미리 매도해서 거래 내역을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취득가액 개념을 오해해서 나온 이야기다. 기획재정부는 세법 시행령을 개정하며 가상자산 과세에 ‘의제 취득가액’을 적용했다. ‘2022년 1월 1일 0시 기준 가격’과 ‘실제 취득한 가격’을 비교해 더 큰 값을 과세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초 비트코인을 2000만원에 샀는데 다음 해 1월 1일 가격이 7000만원이라면, 비트코인을 7000만원에 취득했다고 보고 이후 생긴 차익만 과세 대상이 된다.


코인 투자로 막대한 돈을 번 ‘고래’(큰손)들은 세금 이슈를 위험 요소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동호 세무사는 “암호화폐로 수십억~수백억원까지 번 투자자들을 직접 상담했는데, 세금 때문에 시장이 떨어질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소액으로 단기 투자하는 개인들의 투심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주식 등과 비교해 기대 수익이 줄어드는 만큼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세금을 피해 국내에서 해외거래소로 가상자산을 빼돌리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적극적인 탈세 시도는 현명하지 않다고 주의했다. 권인욱 세무사는 “나중에 원화로 바꿔쓰려면 결국 국내 거래소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때라도 과세당국이 징수할 수 있다”며 “어떤 눈속임으로도 세금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증빙 책임은 투자자의 몫

A씨처럼 국내외 여러 거래소에서 매매한 경우 투자내역을 모두 증빙하기는 쉽지 않다. 적극적인 투자자 중에는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루에도 수백번씩 거래하는 경우도 많다. 증빙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안이나 증여 등의 이유로 암호화폐를 가족 명의로 옮긴 투자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경우 상속세나 증여세가 문제가 돼 증빙 방법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암호화폐 투자소득을 증명해야 할 최종 책임이 투자자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는 세법 시행령 브리핑에서 “가상자산은 기본적으로 소득세 과세대상”이라며 “투자소득이 연간 250만원을 넘는 것으로 계산한 투자자는 스스로 신고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외 거래소를 아우르는 과세 시스템을 아직 구축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다른 거래소에서 유입된 코인이 매도된 경우 최초 취득가액을 알 방법이 없다. 해외거래소의 경우 협조를 받기가 더욱 까다롭다. 기재부는 지난달 20일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고객의 동의를 얻어 취득원가 정보를 타 거래소에 제공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4일 서울 용산구 코인원 고객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 뉴시스

세무사들은 조사에 대비해 최대한 거래 증빙 자료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 세무사는 “암호화폐 매매 내역을 거래소에서 다운로드해야 한다. (매매 내역이 없다면) 거래를 증명할 수 있는 메일이나 메시지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코인 세금’ 내면 건보료 더 낸다?

가상자산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분리과세 된다. 이자·사업·근로소득 같은 종합소득에 합산되지 않아 전체 세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과세당국은 국제회계기준과 현행 소득세 체계 등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투자로 큰 차익을 보면 건강보험료가 늘어날 수 있다. 건보료 산정 대상에 기타소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만 기타소득 중 로또 당첨금 같은 일시적 소득은 건보료 산정 시 계산하지 않는다. 권 세무사는 “건강보험공단이 가상자산 소득을 로또처럼 일시적인 성격으로 볼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건보공단 측은 이와 관련해서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가상자산 과세가 내년부터 시작되면 건보료에 연계되는 것은 2023년 말”이라며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가상자산을 어떻게 분류할지 세법을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우 세무사는 “정부가 가상자산을 화폐로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금융자산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250만원 공제 같은 것은 해외 주식 과세 체계에서 준용해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과세는 정말 유예될까

암호화폐 과세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5월 언론 인터뷰에서 과세 유예 필요성을 언급한 데 이어 여당은 최근 이를 사실상 당론으로 확정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가상자산 과세 시행일을 연기하는 개정안을 앞다투어 발의했다. 투자자 보호가 충분하지 않고 과세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가상자산TF 제2차 회의가 지난 7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민주당은 최근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했다. 뉴시스

업계에서는 대선을 앞둔 만큼 과세가 유예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표심’만 좇아 과세 원칙을 허물다 보면 정책 신뢰를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 세무사는 “정부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기준을 따라 몇 년 전부터 과세를 예고해왔다. 당장의 표만 생각해서 이를 미루자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시행을 해나가면서 부족한 부분은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된다”고 말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