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회사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대우건설 전 팀장에게 배임 혐의 무죄가 확정됐다. 개인이 아닌 회사를 위해 비자금이 쓰였다면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2007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대우건설 토목사업기획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토목공사 하청업체가 골프장 공사 하도급을 요청하자 “공사 대금을 올려주는 대가로 20억원의 리베이트를 달라”고 요구한 뒤 8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행위는 개인적 이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됐다”며 “불법이득 의사가 없었으므로 배임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A씨가 조성한 비자금은 영업비용 외에 각종 행사경비, 현장격려금, 본부장 활동비, 경조사비, 민원처리와 재해보상비, 명절 떡값 등에 사용됐다.
1심은 “A씨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로부터 리베이트 명목으로 자금을 제공받았고, 하도급의 대가로 리베이트를 수수하는 건설업계 관행은 하청업체의 부실시공을 야기하거나 리베이트를 위해 증액된 공사비용이 대중에게 전가되는 폐해를 일으킬 수 있다”며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수수한 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들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임직원이 비자금을 조성해 회사운영에 필요한 자금으로 썼다면 불법적으로 이득을 볼 의사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보고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반면 2심은 A씨에게 “증거들만으로는 불법이득의사가 실현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A씨의 비자금 조성 행위가 회사의 원활한 운영, 임직원 관리, 거래처와 유대관계 유지 등을 위한 것이었고 개인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비자금 조성이 대표이사의 승인 아래 이뤄졌고, 비자금 일부가 공사 수주에 영향을 미치는 설계평가심의위원들에게 뇌물로 건네졌을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실제 A씨는 공사 수주를 위한 영업비, 행사 경비, 명절 떡값 등을 법인카드로 충당하기 부족하다고 보고 부서 차원에서 리베이트를 받아왔다. A씨의 상관인 토목사업본부장 2명도 이를 위해 3년간 비자금 255억원을 조성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A씨 재직 이전에도 130억원 상당의 비자금이 부서 차원에서 조성됐다. 비자금은 본사 지하주차장 창고에 있는 금고, 시내 모처의 오피스텔에 보관돼온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