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가 물질하는 그 곳이 하얗게 사막이 되고 있다”

입력 2021-11-04 16:26 수정 2021-11-05 10:15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형제섬이 보이는 해안지역에 갯녹음 현상이 퍼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제주 연안에 갯녹음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유의 백화현상이 연안 전역에 넓고 깊게 확산하면서 해양 생태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갯녹음이 나타나는 조간대와 조하대 10m 이내 지점은 제주 해녀들이 물질하는 지역과도 일치한다.

녹색연합은 4일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9~10월 두 달 간 진행한 제주 연안 조간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큰 대조기 간조 시간대를 이용해 도내 97개 해안마을의 200개 조간대를 직접 조사한 결과 2곳을 제외한 198곳에서 갯녹음현상이 확인됐다.

갯녹음은 연안 암반에 사는 미역 감태 모자반 등 직립형 대형 해조류가 사라지고 무절석회조류가 암반을 뒤덮는 현상이다. 석회조류가 살아있을 때는 암반 일대가 분홍색을 띠지만 죽고 나면 흰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갯녹음을 일컬어 ‘백화현상’이라고도 한다. 연안 해양생물의 먹이이자 산란장, 은신처인 해조류 군집이 사라지면 해양 생물이 살기 어려워 해양 생태계 종다양성이 크게 훼손된다.

녹색연합 조사에서는 갯녹음 현상의 한계지점으로 분류되는 수심 15m에서도 관련 현상이 확인됐다. 갯녹음이 조간대 하부(항상 물에 잠겨 있는 지역) 얕은 곳에서 진행되다 마지막에 조간대까지 확산되는 경향을 고려할 때 제주 연안의 상태는 갯녹음 말기 현상으로 판단된다.

조간대 암반을 뒤덮은 석회조류는 대부분 하얗게 죽은 상태였다. 수중조사에서 수중 5m 이내 서귀포항 동방파제 지역은 이미 극심한 갯녹음 현상으로 아무것도 살지 않는 상태였다. 서귀포 외돌개 수심 15m 지점에선 감태 등 대형 해조류가 거의 사라진 것이 확인됐다.

서귀포 권역은 안덕면 사계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조사 지역에서 조간대 해조류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연안 갯녹음 현상이 확인된 곳은 제주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구역과 일치한다. 조간대와 조하대 10m 이내 바다가 사막화 되면 해녀들이 채취하는 톳, 모자반, 우뭇가사리는 물론 소라와 전복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유명 해안 관광지마다 갯녹음 현상이 일어나면서 경관 훼손도 심각한 상황이다.

녹색연합은 제주도에 민관합동협의체 구성을 통한 명확한 원인 규명을 촉구했다.

이들은 “그동안 조사에서 갯녹음 현상의 원인으로 수온 상승, 환경오염, 성게 등 초식동물의 과도한 먹이 활동 등이 지목됐지만 정확한 원인은 추정에 머물고 있다”며 “연안 내부, 아열대 생물의 유입, 각종 생물의 북방한계선의 변화 등 해양 현황에 대한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육상해역에서 발생한 오염원이 지속적으로 연안에 유입되고 있다”며 “제주의 환경 수용력을 고려한 규제와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