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모욕하는 비속어로 자리를 잡은 “렛츠고 브랜든(Lets Go Brandon)!”이라는 구호가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가자 브랜든!’이라는 응원이 어쩌다 바이든을 욕하는 말이 됐을까.
지난달 2일 미 앨라배마주 탈라디가에서 열린 미국스톡카경주협회(NASCAR) 주최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NBC스포츠 기자가 우승자 브랜든 브라운과 인터뷰할 때였다. 당시 기자 뒤에선 관중들이 “엿 먹어라 조 바이든”이라고 외쳤다. 그런데 기자는 이를 잘못 알아듣고 관중들이 브랜든을 응원하는 의미의 ‘렛츠고 브랜든’을 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뒤로 ‘렛츠고 브랜든’은 공화당원 사이에서 ‘엿 먹어라 바이든’이라는 뜻으로 대놓고 쓰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밈(인터넷을 중심으로 모방을 거듭하는 유행)’이 돼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주로 스포츠 경기장에서 등장했다. 대학 미식축구 경기가 열린 지난달 9일 앨라배마주 조던 헤어 스타디움에서 관중들은 “렛츠고 브랜든”을 외쳤다. 물론 바이든을 겨냥한 구호였다. 경기장 상공에는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매단 비행기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17일에는 월드시리즈를 관람한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공화당 상원의원이 한 야구팬 옆에서 “가자 브랜든! 말해 봐”라고 부추기는 영상을 찍어 틱톡과 트위터로 공유했다.
지금 “렛츠고 브랜든”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쓰인다. 전국 각지 도로에 이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세워졌고, 지난 16일에는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한 세차장 출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 ‘렛츠고 브랜든’이 표시됐다. 표지판은 해킹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렛츠고 브랜든’ 문구가 큼직하게 박힌 빨간색 모자를 쓰고 주지사 선거 유세에 참석했다.
공화당 의원들이 공식석상에서 “렛츠고 브랜든”을 외치는 장면도 흔해졌다. 빌 포지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은 지난달 21일 의회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렛츠고 브랜든”이라며 연설을 마쳤다. 제프 던컨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하원의원은 ‘렛츠고 브랜든’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의회에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백신 접종 홍보를 위해 시카고 교외 건설현장을 방문했을 때 시위대는 “렛츠고 브랜든”과 “엿 먹어라 바이든”을 모두 사용했다. 바이든의 차량 행렬이 뉴저지주 플레인 필드를 지나갈 때도 ‘렛츠고 브랜든’ 현수막이 등장했다.
지난달 30일 월드시리즈 4차전이 열린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경기장에서 관중은 트럼프 전 대통령 부부를 향해 “렛츠고 브랜든”을 외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미소를 지었다.
애플뮤직 차트에서는 브라이슨 그래이의 랩 ‘렛츠고 브랜든’이 1위를 차지했다. 로자 알렉산더의 동명 노래도 상위 10위권에 올랐다.
지난달 29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뉴멕시코 앨버커키까지 운항하는 사우스웨스트항공 여객기 조종사는 기내방송 인사말에서 “렛츠고 브랜든”이라고 말했다가 내부 조사를 받고 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