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어려워진 자영업자를 돕는 일이라며 10대 여고생을 꾀어 중고거래 사기에 악용한 이들을 경찰이 추적하고 있다. 일당에게 속아 계좌를 빌려 준 여고생 역시 경찰에 입건되는 등 비슷한 사기 피해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17)은 지난 9월 16일 용돈 벌이를 위해 고수입 아르바이트를 내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여기서 알게 된 B씨는 메신저로 A양이 사는 곳을 묻더니 “내가 그 지역 ○○여고 졸업생”이라며 “카카오페이 거래 내역을 늘려 대출 승인율을 높이는 재택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A양 계좌로 입금된 돈을 자신에게 보내주면 수수료 명목으로 일당 3만5000원을 주겠다고 말했다. 현금자동인출기(ATM)와 연동되는 A양 은행 애플리케이션으로 송금 요청이 들어오면 A양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승인만 하는 단순한 일이라는 설명도 달았다.
A양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묻자 B씨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재송금을 해줘 돈을 부풀려 돌려주는 작업”이라고 둘러댔다.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A양은 B씨에게 자신의 개인정보와 계좌정보를 알려줬다고 한다.
그런데 A양 계좌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상품권 사기에 악용됐다. B씨가 10만원짜리 백화점상품권을 8만7000원에 판다는 글을 올려 구매자가 연락을 해오면 A양 계좌를 입금 계좌로 안내하는 식이었다. A양 계좌는 이렇게 9일간 사기 범죄에 동원됐다. 그 사이 1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 금액은 4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계좌가 범죄에 쓰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A양은 구매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양은 “용돈을 좀 벌어보겠다고 겁도 없이 오픈채팅방에서 알바를 구한 건 제 잘못입니다. 힘들어하는 자영업자에게 더 큰 돈을 주는 거라고 해서 속았습니다. 당장 경찰에 전화를 해 신고하려고 합니다.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B씨는 A양 외에도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여러 명의 계좌를 중고거래 사기 통로로 악용했다. 계좌를 빌려줬던 이들이 항의를 하면 B씨는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라”며 계좌를 대여한 다른 이의 연락처를 주고 연락을 끊었다. 경찰은 B씨 신원을 특정하기 위해 그의 카카오톡 아이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범죄에 쓰일 줄 몰랐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A양 역시 형사처벌을 받을 상황에 놓였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A양을 사기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2일 밝혔다. 인터넷 사기 피해 정보공유 사이트 ‘더치트’에는 A양 계좌로 사기를 당했다는 글들이 추가로 올라오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경찰 관계자는 “10대 청소년들이 인터넷 고액 아르바이트라는 말에 현혹돼 계좌를 공유하고 사기 범죄에 연루되는 사례들이 계속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