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지난 31일 실시한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며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당 핵심인 중진 의원들이 대거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세대교체’라는 여론의 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1일 일본 총무성 선거 개표 결과 자민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261석을 확보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절대안정다수’ 선에 발을 걸치는 데 성공했다. 연립여당을 이루는 공명당이 32석을 얻어 기존 305석에서 293석으로 의석 감소를 최소화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도쿄 자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라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라는 민의를 긴장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엄중한 문책도 달게 받아들여 신속하게 정책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선거에 승리한 기시다 총리가 이례적으로 승리 연설에서 ‘엄중한 문책’이란 단어를 꺼낸 이유는 당내 중진들이 대거 낙선한 탓으로 풀이된다. 당내 핵심 실세인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간사장은 지역구 가나가와에서 입헌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현직 여당 간사장이 지역구에서 패배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NHK는 “아마리 간사장은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변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도쿄 8구에서는 이시하라 노부테루 전 간사장이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이시하라 전 간사장은 30년 동안 이 지역구를 독점했지만 석패율 기준인 80%에도 미치지 못해 낙선이 확정됐다. 동생 히로타카 역시 도쿄 3구에서 낙선했다.
제2도시 오사카에서는 15개 선거구 모두 지역정당인 일본유신회가 석권했다. 오사카는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 중 하나다. 유신회는 이번 선거에서 의석 수를 41석까지 확장했다.
이 밖에도 지바 8구에서는 사쿠라다 요시타카 전 올림픽상이 첫 출마한 민주당 후보에게 5만표차 이상 격차를 내줬다. 사쿠라다 전 올림픽상은 2016년 일본군 위안부를 ‘직업적 매춘부’라고 부르는 등 일본 정치계에서도 ‘망언 제조기’로 불린다. 마이니치신문은 다만 “지역구에서 낙선한 중진 일부는 공동출마한 비례대표를 통해 부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반대로 기시다 내각에서 배제된 인사들은 대승을 거뒀다. 고노 다로 자민당 홍보본부장은 지역구에서 77% 득표율로 승리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도 개표 2시간 만에 당선이 확정됐다. 아사히신문은 “당에서는 비주류지만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후보들이 약진한 것은 당내 세대교체가 시급하다는 대중의 판단”이라고 분석했다.
예상 밖 선전으로 국정 운영에 탄력을 얻은 기시다 총리는 10일 101대 총리에 취임할 예정이다. 2기 내각 출범 전에는 낙선한 아마리 간사장을 교체할 가능성이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조회장과 고노 본부장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