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정권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고 AFP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아쿤드자다는 2016년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아흐타르 만수르에 이어 탈레반을 지휘해왔지만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군중을 상대로 한 연설도 처음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은 탈레반 홍보용 SNS 계정을 인용해 “아쿤드자다가 전날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이슬람 학교 다룰 울룸 하키마에서 연설했다”며 “정치보다 종교적 메시지로 연설하면서 탈레반 지도부와 대원을 축복하는 기도를 했다”고 보도했다. 칸다하르는 1994년 탈레반이 결성된 곳이다.
아쿤드자다의 연설은 삼엄한 경계 속에서 진행됐다. 그의 연설 순간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되지 않았다. 연설 장면은 외신 보도는 물론, SNS를 통해서도 배포되지 않는다. 탈레반은 홍보용 SNS 계정을 통해 10분 분량의 아쿤드자다의 연설 음성 파일만 공개했다.
탈레반은 미군 철군에 따라 지난 8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내전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아쿤드자다는 정권 장악 과정에서도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9월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 총리 대행 중심의 과도정부 내각 명단이 발표될 때도 아쿤드자다는 은신했다.
이슬람 종교학자 출신인 아쿤드자다는 탈레반의 정권 장악 전까지 정치, 종교, 군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왔다.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초월적 지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과 종교 지도자로서만 존재하고 국정을 이원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린다.
다만 아프가니스탄 정권 장악 이후 첫 군중 앞 연설 장면도 공개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아쿤드자다가 당분간 은둔을 계속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아쿤드자다는 이런 은둔 행각으로 한때 사망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아쿤드자다가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자 당시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가 SNS에서 반박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