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월미도. 이름은 섬이되 이제는 섬이 아닌 곳. 둘레 1㎞, 육지와의 거리 1㎞의, 꼬리가 휜 반달 모양이던 섬은 인천개항을 전후해 외세의 각축장이었는데 1920년대 일제가 유원지 등으로 개발하기 위해 돌축대를 쌓는 바람에 육지화됐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시설이 초토화됐고 그 뒤 미군용지로 이용됐던 월미도는 1980년 이후 인기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해수욕장과 테마파크, 호텔이 들어섰고 문화의거리와 그 주변에는 카페와 횟집, 조개구이집 등이 즐비하다. 서울과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바다와 낭만을 즐기려는 행락객들로 붐빈다.
고정남 사진작가가 이런 월미도를 개인전 ‘월미도 로망 쓰’를 통해 담아낸다. 오는 5일~14일(관람 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 최종일은 낮 12시) 인천 창영동 인천문화양조장 스페이스 빔 우각홀에서 열리는 전시는 고 작가의 눈으로 재해석한 월미도에 관한 기록이다. 그저 바다가 그리워 찾아간 월미도에서 작가는 “알록달록한 컬러와 타인의 사소한 행복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풍경”을 마주쳤다고 한다. “제멋대로 생겨나 제멋대로 배치”된 공간인데도 “신기하게도 이 장소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곳을 즐기고 나름대로 만족하여 돌아가고 있었고 관찰자로서 이 광경이 주는 실소와 안도감을 즐기게 됐다”며 이 감정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는 “역사의 상흔이 조악한 관광상품으로 뒤덮여 가면서 나타나는 특징들, 뽕짝-풍의 친근하고 기이한 명랑함이 월미도의 지금을 만들었다”며 “월미도가 내뿜는 원색적인 욕망과 거친 느낌의 장면들을 키치적 현상으로 꾸준히 연결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월미도 로망 쓰’인 셈이다.
김석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며 내재한 ‘역사’를 인식하는, 이런 식의 사유는 월미도가 지닌 복잡한 역사에 대응하는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작가가 제시한 월미도의 모습을 관객이 각자의 상황에서 다양하게 바라보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진전은 물론이거니와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을 둘러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인천문화양조장은 1926년 설립돼 이듬해부터 인천을 대표하는 향토 막걸리인 소성주(邵城酒)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막걸리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지하수가 예전 같지 않아 1996년 가동을 중단했다. 공장이 옮겨간 뒤 이곳은 인천 관련 자료를 전시하던 ‘아벨전시관’, 문화교육 프로그램 장소 등으로 활용되다 한동안 방치됐으나 인천 문화예술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이 리모델링해 2007년 9월부터 전시, 창작 등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정남 작가는 2002년 첫 개인전 ‘집, 동경이야기’를 시작으로 ‘Song of Arirang_호남선’(2017, 서학동사진관), ‘하이쿠:인천사이다치바’(2018, 선광미술관) 등 1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수인선’(2019, mug출판사) ‘호남선’(2017, 눈빛출판사) 등 다수의 작품집을 펴낸 중견 작가다. 전남 장흥 출신으로 전남대에서 디자인을 배운 후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와 도쿄공예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