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말자 친환경, 그 달콤한 거짓말… 그린워싱 이야기

입력 2021-10-30 05:00
28일 오전 서울 중구 스타벅스 프레스센터점에 리유저블 컵에 담긴 커피가 놓여있다. 뉴시스

2021년 9월 28일, 스타벅스는 50주년을 기념하면서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리유저블 컵(다회용 컵)을 증정했다. 재활용컵을 많이 쓰게 해 환경오염을 줄이겠다는 목표였다. 그런데 스타벅스의 목적은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MD 맛집’ 스타벅스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이 낭비된 셈이 됐다.

스타벅스는 소비자들에게 “컵의 소재가 PP(폴리프로필렌)소재, 즉 플라스틱이므로 재사용 횟수는 20회로 권장한다”고 말했다. 언젠간 다른 컵을 사야 하는 것이다. 논란은 결국 그럴싸한 미끼 상품으로 소비를 유도했다는 ‘그린워싱 논란’으로 이어졌다.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행사로 다회용 컵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고 해명했지만 비판을 잠재우진 못했다.

그린워싱은 1980년대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벨트가 처음 제시했다. 기업이 이익을 챙기려고 친환경을 허위·과장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개념이다.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불거져 온 그린워싱 문제가 요즘 들어 언급이 많아진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 사이에서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친환경 소비를 원하는 그린슈머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기업들은 앞다투며 친환경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기업들은 친환경과 공정무역, 지속가능성 등 소비자를 유혹하는 말만 할 뿐 환경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파괴하는 그린워싱을 자행하고 있다.

환경으로 마케팅하는 기업들… 진짜 문제는 뒷전

페이스북 ‘플없잘’(플라스틱 없이도 잘 산다)에 게시된 사진. 이니스프리의 종이병 한정판 제품(왼쪽)의 종이 포장지를 벗기자 플라스틱 용기가 보인다. 페이스북 캡처

그린워싱의 실태를 고발한 책 ‘위장환경주의’는 글로벌 기업들의 친환경 정책을 고발한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인 네슬레는 고객들로부터 다 쓴 알루미늄 커피 캡슐을 받아 재활용하는 행사를 열었다. 네슬레는 “네스프레소 커피로 환경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환경 파괴 문제는 교묘히 감췄다. 네슬레는 커피 캡슐을 만들면서 연간 8000톤에 달하는 알루미늄을 썼다. 1톤의 알루미늄을 만들기 위해 2인 가구가 5년 이상 쓸 수 있는 전기가 필요하고 8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또한 네슬레는 얼마나 알루미늄 캡슐을 재활용했는지, 캡슐 회수를 어느 정도로 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다. 재활용과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필요한 정보를 숨긴 채 소비자들을 기만한 것이다.

대표적인 패스트패션 기업 H&M도 “플라스틱으로 옷을 만든다”며 친환경 이미지를 만들었다. H&M의 친환경 이미지에 안심한 소비자들은 빠르게 옷을 사고 버리면서 의류 쓰레기들을 만들었다. 개발도상국에서 물을 퍼 탄산음료를 만드는 코카콜라는 세계 지하수를 보호하는 기업으로 셀프 포장했다. 석유생산 기업 쉘은 탄소중립과 풍력발전을 내세우면서 정작 석유 생산량 감소 계획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책의 저자인 독일 언론인 카트린 하르트만은 기업들의 그린워싱에 대해 “고객들이 아무 걱정도 하지 않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한다”고 비판했다.

그린워싱은 비단 외국 기업 뿐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는 종이로 화장품 용기를 만들며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웠다. 막상 열어 본 종이 용기 안에는 플라스틱 통이 들어 있었다. 친환경 마케팅을 위해 쓰지 않아도 될 종이까지 사용하면서 환경 파괴에 동조했다. 이 밖에도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 내용물을 담아갈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을 열며 친환경 마케팅을 이어갔지만 내용물을 담아갈 수 있는 용기를 따로 팔면서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린워싱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갈수록 친환경 전체에 대한 의심은 늘어나고 있다.

그린워싱 구별 방법… 현실적으로 없다

캐나다 테라초이스가 제시한 그린워싱의 7가지 유형. 한은진 기자

캐나다의 친환경 마케팅 기업인 테라초이스는 그린워싱의 7가지 유형을 정리했다. 많은 국가들과 단체들이 이 유형들로 그린워싱을 판별하고 있지만, 사실 유형 하나하나를 점검하면서 그린워싱이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제품 제조과정에서 일어나는 그린워싱은 어느 정도 판별할 수 있지만, 마케팅 분야에서까지 기업의 그린워싱 의도를 따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린워싱 규제는 제품 표시와 광고 위주로 이뤄진다. 제품의 환경성과 관련된 표시 및 광고는 환경부가 감시하고, 환경성 외의 표시 및 광고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담당한다. 제품 환경성의 경우 법적인 기준이 있어 제재가 가능하지만 주관의 영역인 마케팅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스타벅스가 이번 리유저블 컵 행사를 두고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한 것처럼 기업의 의도 하나하나 규제하고 밝혀내기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단법인 두루의 지현영 변호사는 이에 대해 “우리가 흔히 쓰는 친환경이라는 말은 사실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며 “친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만들거나 범주를 한정해 표시와 광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린워싱 해결, 어떻게 할까

환경부는 2013년 ‘짝퉁’ 친환경제품을 가려내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에 더해 2020년에는 그린워싱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지급하는 대책을 내놨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대책이었지만, 결국 그린워싱의 해결 책임을 정보도 부족한 개인에게 떠넘긴 셈이다. 영국 공정거래위원회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그린워싱 사례 중 소비자에게 정보가 부족해 일어난 사례가 50% 이상을 차지했다. 기업들이 정보를 숨기고 왜곡하는 상황 속에서 개인에게 그린워싱 판단을 모두 맡기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임을 보여준다.

지 변호사는 그린워싱을 막기 위해 “공공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투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규제도 필요하다. 프랑스에서는 허위로 캠페인을 벌일 시 캠페인 비용의 80%까지 벌금으로 내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해명자료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영국, 미국, 덴마크는 ESG 투자와 관련해 그린워싱을 식별할 수 있는 별도 팀까지 만들었다.

지 변호사는 이어 “최종소비자의 그린워싱 인식을 돕기 위해 다양한 교육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현재 해외에서는 그린워싱에 대해 소비자들의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소비자가 최종 선택자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린워싱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높아지고 기업은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비로소 그린워싱 문제 해결에 다가갈 것으로 보인다.

한은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