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어 배터리·AI·우주… 세계는 ‘미래산업 샅바전쟁’

입력 2021-10-27 06:30

미래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산업기술 패권 다툼이 뜨겁다. 개별 민간기업을 넘어 국가전쟁으로 체급이 올라가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우주 등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기술경쟁력 확보가 국가 경제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파괴력이 큰 분야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은 아예 국가 차원에서 전략을 세우고, 상대국 기업을 압박하며 주도권 잡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배터리 산업은 ‘제2의 반도체’라 불리며 대표적 미래산업으로 꼽힌다.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기차의 심장’이라 불리는 배터리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7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수요는 지난해 139GWh에서 2030년 3254GWh로 23배나 급증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K-배터리’ 성적은 나쁘지 않다. 세계 점유율 2위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해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기업의 기술력은 경쟁국 중국보다 4년 정도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점유율 1위는 중국 CATL이지만, 에너지밀도가 낮고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집중돼있다. 국내 기업들은 LFP보다 에너지밀도가 높은 삼원계 배터리를 주로 생산한다.


다만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미래시장을 장악하려면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가격 경쟁력은 약하다. 원재료가 되는 광물자원을 자급자족할 수 없다는 건 최대 약점이다. 전문가들은 수급 안정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역할을 지목한다. 정순남 한국전지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K-배터리는 핵심원료 확보, 무역장벽 해소 등 주요 과제들을 해소하려면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정부에 전담부서를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도 전쟁터다. 자율주행 등 광범위한 산업현장에 AI 기술이 적용되면서 국가 산업 전체를 이끄는 기술로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IT 공룡’들은 슈퍼컴퓨팅 인프라로 딥러닝 효율을 높인 ‘초거대 AI’ 개발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AI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확보한 나라는 미국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엔비디아는 매개변수(파라미터) 5300억개에 이르는 초거대 AI 언어모델을 공개했다. 한국에선 네이버와 카카오, KT, LG그룹 등이 글로벌 AI 경쟁에 뛰어들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는 2040억개 파라미터로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LG그룹은 연내에 파라미터 6000억개, 내년 상반기까지 1조개 이상의 초거대 AI를 개발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 중국 등 앞서 달리는 국가와 비교하면 기술 인프라 부족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올해 국제슈퍼컴퓨팅컨퍼런스에서 발표된 ‘전 세계 상위 500대 슈퍼컴퓨터’ 순위에서 국내 슈퍼컴퓨터는 5개에 불과했다. 네이버 역시 미국 엔비디아의 슈퍼컴퓨터를 도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기술 발전에 슈퍼컴퓨터는 필수적인데 개별 기업이 혼자 진행하기엔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쉽지 않다. 핵심기술 기반 확보를 위해 민관이 협력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누리호 발사로 주목을 받은 우주산업도 중요한 미래 먹거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2040년 1조1000억 달러(약 1300조원)로 확대 전망인 우주산업을 차세대 국가산업으로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우주산업 규모는 2019년 기준 약 3조8931억원으로 세계 우주산업의 1% 안팎에 불과하다.

산업계는 국가 차원에서 ‘링’에 올라가야 한다고 본다. 차세대 기술이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만큼 미래시장 확보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다.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국가 간 무역분쟁이나 제재 등 대외변수가 발생할 때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차세대 기술산업들이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게 된 만큼, 다방면에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