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으로 남은 노태우 ‘광주 사죄’…장남 재헌씨 ‘대리 사죄’

입력 2021-10-26 18:24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사죄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영원한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11년 발간된 회고록에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고 기술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여 큰 논란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장남 재헌씨는 2019년부터 매해 광주를 찾아 아버지를 대신해 거듭 사죄의 뜻을 표해왔다. 부친을 대신해 ‘대리 사죄’를 해온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광주에 대한 사죄를 장남에게 맡기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재헌씨는 2019년 8월과 지난해 5월, 지난 4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포함한 두 전직 대통령의 핵심 직계가족 중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압 책임에 대해 사과한 것은 재헌씨가 처음이었다.

첫 참배 당시 재헌씨는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사죄했다. 그는 민주묘지를 찾은 것이 아버지 노 전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히며 “아버지에게 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거듭된 재헌씨의 사과에 5·18 기념재단, 오월어머니회 등 유족 단체들은 “의미가 있다”고 평하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 전 대통령 회고록 개정판 수정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진압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11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운동은 유언비어가 진범이다.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했다”고 주장했다. 또 5·17 계엄 확대에 대해서도 “서울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치안 유지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변명하며 신군부의 무력 진압을 합리화했다.

2019년부터 재헌씨가 병세가 깊어진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재차 사죄하면서 부정적 평가가 누그러졌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직접 사과가 없었다는 점이 한계로 평가된다. 재헌씨는 회고록 개정판 논의가 가능하다며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상태다.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충분히 사과하지 않았다는 한계는 분명하지만 전 전 대통령의 행보와는 차별됐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 헬기 사격을 주장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명예 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전 전 대통령은 불성실한 재판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광주항쟁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재헌 씨 뿐만 아니라 딸 소영씨도 광주와 깊은 인연을 맺으며 간접적으로 사죄하는 행보를 보였다. 2018년 광주시가 주최한 201 아시아문화포럼에서 기조 강연을 했고, 2019년 광주에서 열린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 총괄디렉터로 활동한 바 있다. 또 재헌씨와 함께 오월어머니집 방문도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