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최근 로마 교황청과 수교를 맺는 전제조건으로 대만과의 단교를 직접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은 이에 베이징에 먼저 대사관을 설치한 후에야 대만과의 관계를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의 교황청 고위 관계자 지난 2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최대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를 통해 “중국은 우리가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기를 원하며, 그렇게 되면 우리(교황청)와 외교 관계를 맺겠다고 약속해 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우리는 먼저 중국이 수도 베이징에 교황청 대사관을 열 수 있도록 해야 대만 정부와의 관계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답했다”며 “그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이 변한 건 없다”고 밝혔다.
1951년 단교 이후 중국과 교황청 사이 공식적인 외교 관계는 끊긴 상태다.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 교황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 건 중국 대신 대만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중국이 자국 승인 없는 주교 임명을 거부하면서다. 때문에 이번 제안은 단교 60년 만에 처음 양측의 관계 개선과 관련한 구체적인 틀이 언급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내에는 비공식적으로 교황청의 영향을 받는 지하교회 신도가 약 1000만명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설립한 천주교 단체인 ‘애국회’ 신도도 약 700만명이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대만 언론은 교황청이 미국과 중국의 대치로 대만 해협에서 군사적 충돌 위험이 커지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이번 제안이 큰 진전을 이루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대화를 유지하려는 교황청에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곤혹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대만이 유럽 지역에서 유일하게 수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교황청뿐이다. 교황청은 지난 10일 대만 건국 기념일 행사에 대만인의 축복을 전하면서 돈독한 수교 관계를 내보이기도 했다.
다이루이밍(戴瑞明) 전 주교황청 대만 대사도 대만 언론 중국시보를 통해 “중국이 반드시 교황청에 대만과의 관계 정리를 먼저 요구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그는 “종교의 내정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 정부가 사형제 폐지, 낙태 반대 입장을 주장하는 교황청의 포교를 인정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교황청과 중국은 2018년 9월 중국 측이 주교 7명을 자체 임명할 권한을 갖는 대신 교황을 세계 가톨릭교회 최고 지도자로 인정하는 ‘주교 임명 합의’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체제 이후 교황청이 중국과 관계개선에 나서면서다. 양측은 지난 22일 이 합의를 2년 더 연장키로 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