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 무덤’ 경기지사 넘은 이재명…그 원동력들

입력 2021-10-25 11:57 수정 2021-10-25 14:03
이재명, 경기도 넘어 여당 후보 된 요인
① 코로나19 위기서 강력한 리더십
② 박원순·김경수·안희정 등 경쟁자 부재
③ ‘사이다’ 이미지로 전국적 인기
④ ‘이재명은 한다면 한다’ 기대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기 합동연설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5일 경기도지사직을 사퇴하고 본격 대선 행보에 돌입했다.

경기지사를 거쳐 여당의 대선 후보에 오른 것은 이 후보가 처음이다. 이인제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전 지사 등 ‘대권 잠룡’들이 경기지사를 발판으로 대권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경기지사가 ‘대권 주자들의 무덤’이라는 얘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국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유력 정치인들이 유독 경기도청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으면 중앙 정치권에서 힘을 잃어 갔다.

민주당 의원들과 정치 전문가들은 이 후보가 ‘경기지사 징크스’를 깬 요인으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경기지사로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인 것과 정치적 경쟁자의 공백 등을 꼽았다.

이 후보의 개인적 특징도 대권 후보 자리를 차지하게 된 원동력이다. ‘사이다’ 기질의 개인기와 ‘이재명은 마음만 먹으면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은 이 후보가 경기도를 넘어 전국적 스타로 떠오르게 만든 요인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4일 오후 이낙연 전 대표와 회동하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찻집에 먼저 도착, 이 전 대표를 맞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25일 “감염병처럼 민생과 직결된 위기 시에는 행정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능력 여부가 부각된다”며 “이 후보는 ‘맞다’고 생각되면 밀어붙이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종교단체 집합금지 긴급명령, 재난기본소득 등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성남시장 시절부터 추진한 공공산후조리원과 청년배당 등을 경기도로 확대하고, 계곡정비사업도 이 후보가 경기도 전역에서 전면 실시한 것이 국민들이 이 후보를 주목하게 된 요인 아니겠느냐”며 “코로나19 방역도 이 후보의 강력한 리더십 속에 경기도가 가장 모범적으로 해냈다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외부 경쟁 요인이 사라진 것이 ‘이재명 돌풍’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외부 상황도 이 후보에게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며 “그간 경기지사들은 서울시장에 눌려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못했는데, 이 후보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공백으로 수도권에서 인지도를 넓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 전 시장,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링 위에서 물러나면서 자연스럽게 이 후보에게 진보 진영의 관심이 쏠린 것도 사실”이라며 “이 후보는 일찌감치 경기지사보다는 유력 대권주자로 인식된 측면도 있다”도 말했다.

‘사이다’ 이미지도 큰 도움이 됐다.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고 국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발언들을 쏟아내면서 전국적 인기를 누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재명이라면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이 후보에겐 큰 힘이다. 특히 여당 내에서는 이 후보가 지난해 2월 경기 과천 신천지 본부를 ‘급습’해 신도 명단을 확보한 장면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작년 초 ‘신천지 사태’ 때 과천 본부와 가평의 이만희 총회장 본거지를 전격 방문한 것이 결정적 장면일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전국민적 위기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이재명은 마음 먹으면 해내고 만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줬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 후보가 2018년 경기지사 경선에서 친문 핵심인 전해철 의원(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누르고, 지난해 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재판에서 기사회생하는 등 드라마틱한 사건이 연속된 것에서도 원인을 찾는다. 박성민 대표는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지사직 박탈 위기까지 갔던 이 지사가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극적으로 살아남게 된 것도 대중에게 그의 정치 스토리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요인이 향후 본선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박상병 교수는 “지금은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판’이기 때문에 이 후보의 강력한 리더십이 여전히 빛을 발할 것”이라고 봤다.

반면 박성민 대표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등이 터지면서 이 후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다소 떨어진 상황”이라며 “의혹을 무조건 부인하면서 역으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겁 없는 추진력’이 국민들에겐 위험 요소로 비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