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세 ‘나치 전범’ 법정 세운 독일…‘철저한 과거청산’

입력 2021-10-20 15:19
나치 만행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받는 이름가르트 푸르히너. AP뉴시스

독일 사법당국이 96세 고령의 나치 전범을 1만1000여명 살인에 가담한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예외 없이 철저한 독일식 ‘역사 청산’의 단적인 예다.

AP통신은 19일(현지시간)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조력한 여성 전범 이름가르트 푸르히너(96)가 결국 과거사 청산의 심판대로 불려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날 공판은 지난달 피고인이 재판 직전 도주를 시도했다가 붙잡힌 지 3주 만에 재개됐다. 당시 경찰에 붙잡힌 그는 5일간 구금됐다가 전자팔찌를 착용한 뒤 풀려났다.

푸르히너는 1934~1945년 강제수용소에서 약 1만1000건에 달하는 살인에 조력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 그는 18세부터 폴란드 그단스키 인근에 세워진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파울 베르너 호페 사령관의 비서 겸 타자수로 일하며 잔혹 행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다만 푸르히너에 대한 재판은 범행 당시 나이를 반영해 소년법원에서 이뤄졌다.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들어선 피고인. AP뉴시스

그는 이날 오전 스카프와 선글라스, 마스크로 얼굴을 꽁꽁 가리고 휠체어를 탄 채로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이체호의 법원에 들어섰다.

법정에 들어선 뒤 판사 요청으로 스카프와 선글라스를 벗어 모습을 드러냈다. 피고인석 주위는 코로나19 방역 을 위해 투명 유리 스크린이 둘러 세워져 있었다.

변호인에 따르면 푸르히너는 재판 도중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 확인을 제외하고는 다른 질문에 침묵을 지켰다. 영국 언론 가디언은 “검찰의 공소 내용이 법정에 울려 퍼질 동안은 (피고인이)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면서 “이따금 얼굴을 비비고, 왼쪽 손목에 부착된 전자팔찌를 움켜쥐거나 법정 안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푸르히너가 근무했던 슈투트호프 수용소는 나치독일이 1939년 폴란드 북부 지역에 독일이 세운 이후 6만명이 넘는 유대인과 폴란드인 등을 살해한 종족 집단학살의 현장이다. 나치는 총살, 굶기기, 한겨울에 벌거벗겨 밖에 방치하기, 심장에 직접 유독물질 주입하기, 독가스실에 감금하기 등 온갖 잔혹한 수단을 학살에 동원했다.

독일 법원은 2011년에도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존 뎀야누크(당시 91세)에게 직접적 증거가 없음에도 살인 조력 혐의의 유죄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한 바 있다. 해당 판결은 분기점으로 작용해 이후 관련자들에 대한 유죄 평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에는 나치 수용소에서 일하며 소련군 포로들을 학살하는데 가담한 혐의를 받는 100세 남성에 대한 재판도 이뤄졌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