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쌀 천사’에 화답, 이장들의 ‘사랑의 쌀’ 6년째

입력 2021-10-14 14:46
전북 완주군 용진읍 각 마을 이장들과 부녀회장, 새마을회원, 기관단체장 등이 13일 구억리 일원 논에서 사랑의 벼를 수확하기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완주군 제공.

2008년 12월 어느 날, 전북 완주군 용진읍 사무소 앞에 누군가 밤 사이 쌀 60여포대를 몰래 놓고 갔다. 이후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비슷한 양의 쌀 포대가 놓여졌다. 군민들은 이 사람을 ‘용진의 얼굴없는 천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2016년 용진읍 40여명의 이장이 이를 본받고 보답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남는 군유지를 빌려 농사를 지었다. 수확한 쌀을 어려운 이웃 수백여명에게 나눠주며 손을 잡아줬다. 이 쌀엔 ‘사랑의 쌀’이란 별칭이 붙었다.

아름다운 ‘기부 레이싱’을 해오기 6년째, 용진읍이장협의회가 13일 구억리 일원 논에서 여섯 번째 사랑의 벼 베기 행사를 진행했다. 이 행사에는 각 마을 이장들과 부녀회장, 기관단체장 등 70여명이 참여했다.

이 벼는 이장협의회가 지난 5월28일 8900㎡ 논에 모내기하고 열심히 가꿔온 것이다. 이날 수확한 벼는 3000㎏가량으로 도정 작업을 거쳐 올해 말 지역내 홀로사는 노인과 한부모가정 등 소외계층 300여 가구에 전달할 예정이다.

김현봉 사랑의 쌀 명예추진단장은 “모내기 이후 정성으로 관리해준 이장들 덕분에 올해도 벼의 생육상태가 매우 좋다”며 “태풍에 가슴을 졸이기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무척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명석 이장협의회장은 “용진 얼굴 없는 쌀 기부 천사의 선행에 보답하고자 이장들이 스스로 추진해 온 사랑의 쌀 사업이 벌써 6년째를 맞았다”며 “앞으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온기를 전달하는 일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일손을 거든 박성일 완주군수는 “사랑의 쌀이 이제 용진읍의 이웃 사랑을 향한 새로운 브랜드가 됐다”며 “이장들의 애정과 열정이 담긴 훈훈한 나눔이 널리 확산해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지역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얼굴 없는 기부 천사가 지난 해 12월 놓고 간 쌀 60포대가 완주군 용진읍행정복지센터 민원실 입구에 놓여 있다. 완주군 제공.

더불어 ‘얼굴없는 천사’의 기부도 13년째 계속 이어졌다.

이 천사는 지난 해 12월 28일 새벽에도 10㎏짜리 쌀 60포대를 놓고 갔다. 쌀포대 위에 놓인 편지에는 “금년 한해는 온통 세상이 코로나 역병으로 정말 살기 어려운 한해였다”며 “강추위가 시작하는 동절기에 우리 사회의 손이 덜 미치는 구석구석 찾아 훈훈하고 생기 넘치는 용진읍이 되었으면 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동안 천사가 보낸 쌀은 390포대, 모두 7800㎏에 이른다.

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