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이 인정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결정을 취소해야 한다며 제기한 소송이 본격 시작됐다. 박 전 시장 부인 측은 12일 첫 변론기일에서 “형사사법 기능이 없는 인권위가 불완전한 절차로 사실상 박 전 시장을 성범죄자라고 결정한 것”이라며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12일 박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제기한 권고결정 취소소송의 첫 변론을 진행했다.
강씨의 소송대리인 정철승 변호사는 이날 재판에 출석해 “형사사법 기관이 아닌 인권위가 (박 전 시장이) 성범죄자라고 결정하고 발표해버린 것은 월권”이라며 “이미 망인이 돼 유리한 진술을 할 기회조차 없는 피조사자(박 전 시장)를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낙인찍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피조사자의 무덤을 누군가 파헤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는데, (무덤을 판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성범죄를 저지르고 편안히 누워있는 박 전 시장이 너무 미워서 그랬다’고 했다”며 “인권위 결정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했다.
또 정 변호사는 “성희롱 행위라고 판단한 근거와 자료, 조사 결과 등을 공개해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 측 소송대리인은 서울시와 여성가족부 등 기관들에 반복된 성희롱과 2차 피해에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에 관해 직권조사한 끝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을 뿐 박 전 시장은 권고 대상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인권위 측은 “해당 결정은 박 전 시장에 대한 결정이 아니라 서울시장, 여성가족부 등에 대한 것”이라며 “결정은 지자체 내에서 반복된 성희롱 행위에 대한 제도 개선에 관한 것이며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 권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직접적으로 박 전 시장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강씨)에 대한 구체적 법익 침해가 없다”며 “인격권이 침해될 여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제3자인 강씨의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소를 제기할 요건은 갖추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원고 적격성’이 없다는 취지다.
정 변호사의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두고는 “어떤 절차로 조사했고 어떤 근거로 인용했는지는 결정문에 이례적으로 상세히 나와 있다”며 “결정문으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법적으로 제3자인 원고의 인격권이 인권위의 처분에 대해 다툴 요건인 ‘법률상 이익’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라며 “그 부분을 먼저 심리한 다음 실체적인 부분을 심리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는 11월 30일 2회 변론을 열기로 하고 재판을 마쳤다.
박 전 시장은 지난해 7월 8일 강제추행·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피소됐으며 이틀 뒤인 10일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일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직권조사에 나선 인권위는 올해 초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한 성적 언동 일부가 사실이며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인권위는 서울시에 ▲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예방 ▲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비서실 운영 관행 개선과 성평등 직무 가이드라인 마련 ▲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절차 점검과 2차 피해 관련 교육 강화를 권고했다.
그러자 강씨는 올해 4월 인권위의 결정이 피해자의 주장만을 받아들였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