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인사만 공직”…홍콩 선거제 개편후 첫 의회 선거에 야당 후보 ‘0’

입력 2021-10-12 11:40
친중 성향의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지난 6일 입법회(의회)에서 임기 마지막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기본법 23조 이행을 위해 자체 보안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홍콩의 자체 국가보안법 입법 추진을 강조했다. AFP연합뉴스

친중 인사만 공직을 맡을 수 있도록 홍콩 선거제도가 개편되고 처음 치러지는 입법회(홍콩 의회) 선거에서 야당 출마 희망자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홍콩 공영방송 RTHK 등에 따르면 홍콩 최대 야당인 민주당은 전날 입법회 선거 출마 신청을 마감한 결과 접수한 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지난달 입법회 선거에 후보를 낼지 논의하면서 선거 참여 여부를 당론으로 정하려 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때까지 출마 의사를 밝힌 당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신 ‘출마 희망자는 당원 40명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지침을 마련하고 신청을 받았다. 민주당이 입법회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면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야권 붕괴는 홍콩 선거제 개편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선거제 개편 작업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는 원칙을 제시한 이후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지난 3월 개편안 초안을 의결했고, 이어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세부 사항을 확정해 통과시켰다. 전인대와 전인대 상무위 표결 과정에서 반대는 단 한 표도 나오지 않았다. 홍콩 입법회는 지난 5월 선거제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입법회 의석은 70석에서 90석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기존에 35명이었던 직선제 의원 수가 20명으로 줄어드는 등 전반적으로 친중 인사들이 의회에 더 많이 진출하도록 의석이 설계됐다.

무엇보다 자격심사위원회가 공직 후보자의 이력과 과거 발언 등을 따져 출마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 때문에 야권 인사가 이러한 검증 과정을 통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콩 입법회는 지난해 11월 민주 진영 의원들이 총사퇴하면서 이미 친중 인사들로만 채워져 있다. 이대로라면 오는 12월 19일 치러지는 차기 입법회 선거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라우시우카이 중국 홍콩마카오연구협회 부회장은 “민주당에서 출마 후보를 내지 않는 것 역시 중국이 개편한 선거제를 보이콧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며 “중국이 이를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 친중 진영의 최대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 측은 “민주당이 선거를 포기한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며 민주당이 민주진영 전체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