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부끄러운 것은 숨기거나 외면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양심에 어긋난 짓이나 심지어 민족 반역 행위를 하고도 거리낌 없이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철면피들이 득세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고 반성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역사 발전에 희망을 갖게 되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소위 치부, 부끄러운 시기라 하여 들추지 않는 ‘외면당한 시기’가 있었다. 고려 말 원 간섭기가 그 중 하나다. 필자는 그 시기에 대해 몽골의 9차에 걸친 침략에도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꿋꿋하게 항전했으며, 처인성과 충주성 전투에서 승리한 사실을 강조해서 배운 기억이 있다.
고려와 몽골제국의 화친으로 왕이 강화에서 개경으로 돌아간 후, 삼별초가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겨가며 저항해 민족의 자주성을 드높였음을 역설하고, 忠(충성 충)자로 시작하는 왕들은 건너뛰었다. 이어 공민왕의 쌍성총관부 수복과 원 체제하에서 제후국으로 격하된 관제의 원상회복, 원 간섭 기구였던 정동행성과 몽골풍습 폐지, 권문세족 등 부원배 척결과 신돈이 이끈 전민변정도감 등 반원 자주화와 개혁 정책을 배웠다.
고려왕은 앞글자만 따서 “태혜정광 경성목현 덕정문순 인의명신 희강고원 ‘충’ 공우창공”으로 외웠다. 따라서 ‘충’자로 시작하는 왕은 각각으로서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충’으로 시작하는 충렬, 충선, 충숙, 충혜, 충목, 충정의 여섯 왕, 즉 원 간섭기 또는 원의 부마국이었던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시기가 한편으로는 고려왕조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이행하는 조선왕조 개창의 인적 자원과 사상적 바탕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 시기였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 세조 쿠빌라이의 외손자인 충선왕이 생애 대부분을 대도, 현재의 북경에서 생활하고, 그가 그곳에 세운 도서관인 ‘만권당’이 조선 왕조 개창의 사상적 기반인 성리학을 유입시키고, 개혁의 중심 세력인 정몽주, 정도전, 조준 등에 큰 영향을 끼친 이제현과 이색, 안향 등 유학자를 양성해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며 부정부패를 일삼던 부원배들을 낱낱이 드러내 걸러낼 수 있었다. 더불어 당시의 활발한 국제 문화 교류가 조선 초기의 과학 기술과 문화 융성에 한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어려움’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키워나가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 알맹이와 껍데기를 가려내는 ‘키’와 ‘체’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위기가 우리만의 위기는 아니지만, 이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런 시기에는 리더의 선택이 중요하다.
정치인의 진면목은 위기의 시기에 잘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치인들 하나하나의 선택과 행동이 우리들 눈에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누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고 누가 자신의 영달만 꾀하는 정치꾼인지, 누가 이권만을 좇아 헤매는 정치 장사꾼이고 누가 입으로만 국민을 말하는 인기 영합꾼인지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키’와 ‘체’로 쭉정이를 걸러내고 무성한 숲을 이루어낼 희망을 간직한 알맹이를 찾아내는 밝고 맑은 눈이 필요한 때이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